[에콰도르] 11일차 산크리스토발 섬의 아름다운 해변이자 바다사자 서식지인 라 로베리아 구경하기

1. 일정
- 오전 10시-11시 반) 아침 식사
- 오후 12시-4시) 라 로베리아 해변 산책
- 오후 4시 반-6시) 해변가 앞 식당에서 저녁
2. 사진과 감상

아침에 일어나서 보니 침대 머리맡에 걸려있던 그림이 어딘가 익숙한 풍경이어서 한참 보다가 어제 우리가 갔다 온 푼타 카롤라라는 걸 깨달았다. 저 위에 날고 있는 새들은 군함조겠지? 저 그림을 보니 유럽과 남미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열심히 그림을 연습하던 게 생각난다. 여행을 다니며 틈틈이 풍경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간단한 펜화를 꾸준히 연습했는데 막상 여행을 오니 매일 블로그 기록하기도 힘들다...ㅎ


아침으로는 남은 밥에 계란 스크램블을 얹어서 간장계란밥을 해 먹고 후식으로는 어제 산 요거트와 과일을 섞어서 요거트볼을 만들어 먹었다. 여행을 다니니 직접 요리해 먹는 것도 꽤 재미있다. 집에서는 재료가 넘쳐나도 귀찮아서 칼에 손도 잘 안 댔는데 밖에 나오니 요리 도구 만지는 게 즐거움.

밥을 배불리 먹고 바다사자 서식지로 유명한 라 로베리아 해변으로 가기 위해 짐을 챙겨 나왔다. 해변으로 가기 전에, 오늘은 10월 31일 할로윈이니까 나를 위한 초콜릿 간식을 좀 사고 싶어 이틀 전부터 눈여겨봐둔 마트(아래 링크 참고)로 향했다. 전에 이곳에서 과일을 사다가 간식 꾸러미를 5달러에 파는 걸 봤는데 한국에서도 크리스마스날 양말 모양 상자에 랜덤 과자를 잔뜩 담아 파는 것들을 좋아하던 내게 그 꾸러미는 취향 맞춤이었다. 내가 집어 든 3.5달러짜리 꾸러미를 미리 찜해둔 사람이 있었는지 마트 점원이 뭐라 뭐라 했는데,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그냥 계산해줬다.
나와서는 바로 앞에 산크리스토발 시장이 있길래 한 번 구경하러 들어갔다. 큰 건물 입구에 Mercado Municipal이라 쓰여 있는 말끔한 시장이었고 내부는 구역이 잘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숙소 근처에 싱싱한 과일을 싸게 구할 수 있는 조그만 마트도 많았고 이제 해변가로 나갈 계획이었던 우리에겐 딱히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없었다. 싱싱한 고기를 구하고 싶다면 좋을 것 같다. 이제 진짜 해변으로 출발한다!
Multibebidas J.A
Multibebidas J.A · Juan Jose Flores &, Puerto Baquerizo Moreno, 에콰도르
★★★★☆ · 슈퍼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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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로베리아 해변은 시내에서 걸어서 3-40분 정도 걸리지만, 시내에서 1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우리 숙소에서는 20분 정도면 가는 길이다. 땡볕에 걷기 싫다면 편도 3-4달러를 내고 시내에서 택시를 타서 이동할 수 있지만, 우린 배도 불렀겠다 걸어서 가기로 했다. 공사장을 지나면 해변가까지 쭉 뻗은 직선 도로가 보인다. 이곳을 걸어 내려가는 것도 재미있으니 걷는 것을 추천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날이 흐려 걷는 길이 힘들진 않았다. 도로가 끝나갈수록 해안가에서 파도가 치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유명한 해변 치고 길에 사람이 없어 조용히 걸어올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드디어 라 로베리아 해변가 입구에 도착. 걸어온 길을 돌아보니 꽤 먼 거리를 걸어왔다 싶었다.
로베리아 해변
로베리아 해변 · 39FQ+77Q, frente ala pista del avion, Puerto Baquerizo Moreno, 에콰도르
★★★★★ ·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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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판을 지나니 마법 굴다리 같은 덩굴 동굴이 있었다. 그곳을 지나면 뻥 뚫린 바다가 눈앞에 펼쳐진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는 덤. 어제 갔던 플라야 만, 푼타 카롤라나 티헤레타스보다 훨씬 이뻤다. 왜 사람들이 플라야 치노와 이곳을 산크리스토발 섬의 아름다운 해변으로 꼽는지 알겠더라. 오른쪽 멀리 펼쳐진 붉은 풀밭은 세이무어와 모스께라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바다사자를 많이 볼 수 있는 해변가로 가려면 아직 조금 더 걸어야 한다.



처음엔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헷갈렸는데, 걷다 보면 분명 사람들이 가지런히 놓아두었을 돌멩이들이 보인다. 돌멩이들 근처에는 가끔 바다 이구아나가 쉬고 있다가 사람이 가까이 가면 흠칫 놀라 도망친다. 저 멀리 사람 키보다도 큰 선인장이 빽빽한 수풀 사이에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어 신기했다.


그렇게 걷다 보면 저 멀리서 들려오는 바다사자의 울음소리가 해변가에 가까워졌음을 알려준다. 가는 길목에 이렇게 노란 풀밭도 있는데 색이 선명해서 처음에는 꽃이 핀 줄 알았다. 실제로 로베리아 해변이 오는 길에 곳곳에 노란 꽃이 드물게 피어 있어서 헷갈릴만했다. 그런데 풀밭이었음. 노랗게 물든 풀밭이 저렇게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친구랑 여기 제주도 유채꽃밭 아니냐며 웃었다.

노란 풀밭을 지나면 바로 앞에 바다사자와 바다가 펼쳐진다. 푼타 카롤라보다는 적은 수의 바다사자가 그보다 더 넓은 해변가 군데군데 널브러져 쉬고 있는 모습을 보자마자 그 어떤 해변보다도 마음에 쏙 들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마주쳤던 풍경이 다채로웠어서 밋밋한 감이 없지 않아 있던 어제의 해변보다도 좋았다.



해변가 바로 앞에 작은 오두막도 있었는데 무슨 용도로 두었는지 모르겠다. 햇볕을 피해 들어가 있기는 좋지만 정면이 뻥 뚫려 있어 비를 피하기에는 부적절하고, 그 아래는 바다사자들이 그늘을 노리고 몰려들어 냄새가 심해 사실상 사람들이 쓸 수는 없겠더라ㅋㅋㅋ 아기 바다사자도 그걸 잘 아는지 세상 편하게 계단에 머리를 대고 자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 두 녀석을 발견하곤 친구랑 나 둘 다 발걸음을 멈췄다. 얼굴부터 꼬리까지 전부 모래 범벅이 되어 같이 뒹구는 녀석들은 너무너무 귀여웠다ㅠㅠ 저게 바다사자인지 모래 덩어리인지 모를 정도로 너무 귀여웠다.


지금껏 바다사자 아기는 많이 봤어도 둘이 어울려 노는 모습은 본 적이 없어서 너무 신기했다. 꼭 아기 강아지들이 서로 물고 덤비고 간지럽히며 뒹굴거리는 것처럼, 저 녀석들도 모래밭 위에서 한참을 함께 놀았다. 당장에라도 뛰어가서 배를 간질이고 같이 뒹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서 속상했다. 위 영상은 갈라파고스 국보급 영상이니 꼭 보길 바란다...


조금 있으니 옆에도 한 사람이 더 와서 함께 이 귀요미들을 구경했다. 그 사람이 우릴 보면서 미소를 주체하지 못하길래 나도 건치를 자랑해줬다.


그러다가 한 녀석이 따로 떨어져 나와 우리 쪽으로 무척 열심히 달려왔다. 우리를 보고 궁금해서 오는 건지, 아니면 그냥 어딘가로 가는데 그 과정에 우리가 있던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몇 발자국 열심히 통통 튀어 오다가 풀썩 대자로 뻗고, 또다시 열심히 움직이다가 뻗는 걸 반복하더라. 마침 눈앞에 작은 나뭇가지 같은 생선 뼛조각이 하나 있었는데, 그걸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입으로 물었다가 던지고 다시 물기를 반복하는데 진짜 강아지인 줄 알았다.

중간에 갑자기 부슬비가 내리길래 잠시 해변가 뒤쪽으로 피신했다. 해가 구름에 가리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니 금방 날씨가 추워졌다. 다행히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다시 날씨가 확 개었다. 해변가를 보니 맑고 파란 하늘이 있더라. 날씨를 종잡을 수 없다.


챙겨 온 베두인 반다나를 깔고 앉아 간식을 까먹으며 쉬었다(베두인 반다나 넓고 부드러워서 진짜 유용함). 바람은 좀 셌지만 해가 비추어 따뜻해서 좋았다. 우리가 간식을 먹기 시작하자 핀치새들이 눈치 빠르게 옆에 다가와서 한입만을 시전한다. 과자 부스러기를 손에 올려도 다가올까 싶었는데 대담하게 손바닥에까지 올라와서 부스러기를 집어가는 게 너무 귀여웠다.


얼마간 쉬다가 해변가의 끝에는 뭐가 있을지 궁금해져 일어났다. 검은 돌무리를 지나서 난 길을 따라 저 우뚝 솟은 선인장 나무까지 한 번 구경을 가볼까 싶었다. 갈라파고스 톡방에 산크리스토발에서 푸른발부비새를 보고 싶다 하니 어떤 분이 라 로베리아 해변을 따라 난 트레일을 걸어가면 가끔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게 이 길인 것 같았다. 신기한 건 갈라파고스 섬들의 바위에는 붉은 게가 대부분이었는데, 이곳에는 검은 게들이 대부분이었다. 크기도 작고 속도도 재빨라서 내가 다가가려 하면 금방 바위 아래로 숨기 일쑤였다.


길은 생각보다 잘 나 있었다. 처음에는 대부분 평지에 흙길이라 수월하게 걸었다. 오른쪽은 바다와 이어진 돌길이라 시원하게 부딪히는 파도 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어 좋았다. 왼쪽으로는 새들의 분비물로 범벅이 된 바위들이 많았는데, 새들이 많이 왕래하는 곳이 맞는 것 같아 기대가 되었다. 이번에야말로 산크리스토발에서도 바위에 앉아 있는 부비새를 가까이서 볼 수 있지 않을까?
Acantilado La Loberia
Acantilado La Loberia · 398V+G84, Isla de San Cristóbal, Puerto Baquerizo Moreno, 에콰도르
★★★★★ · 야생 및 사파리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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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걷다 보니 어느덧 멀게만 보이던 선인장 나무도 가까워졌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평탄하던 길이 조금 험해지기 시작한다. 세이무어 섬 트래킹 정도 난이도와 비슷한 큰 돌부리와 흙이 섞인 길이 이어지더니, 절벽에 가까워지자 돌만으로 이루어진 길이 나타났다. 옆에서는 큰 파도가 절벽을 때리며 나는 소리가 귀를 강타하지, 앞에는 매끈해 보이는 돌밖에 디딜 곳이 없지... 카메라 줌을 켜서 흰 절벽을 봐도 움직이는 게 없길래 부비새가 없을 것 같아 돌아가기로 했다. 암석 절벽 등반은 너무 무섭다...

돌아가는 길이 이쁘니 됐다... 친구한테 잠깐 저 끝만 보고 오겠다고 해놓고 꽤 멀리 나갔다 와서 빠르게 돌아가야 했지만 저 멀리 해변가와 오두막 한 채가 한눈에 들어오는 모양이 꼭 그림 같았다. 이때 하늘도 딱 맑게 개어서 사진에 푸른 하늘 반, 노랗고 검은 바닥 반이 담겼다.


부랴부랴 돌아가니 친구는 해변가 바위를 밟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물이 생각보다 맑고 얕아서 스노클링하기 무척 좋아 보였다. 날이 개니 사람들도 많이들 스노클링 장비를 챙겨 물속을 탐방하고 있었다. 한 바다사자는 물속에 잠겨 자고 있던데, 친구가 처음 발견했을 때는 죽은 줄 알고 놀랐단다. 우린 스노클링 장비를 안 챙겨 온 걸 아쉬워하며 물에 잠긴 돌 머리 위를 건너다가 얕은 곳에서 돌아다니는 거북이도 봤다. 처음에는 바다사자 날개인가 했는데 거북이 날개가 물 밖으로 튀어나온 거였다! 눈을 있는 힘껏 찌푸리고 보니 물속을 유유히 돌아다니는 거북이를 볼 수 있었다.
장비가 없어도 일단 그냥 들어가 볼까? 하며 고민하고 있는 사이에 날씨가 또 변덕을 부려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단순 부슬비가 아닌 꽤 굵은 소나기였다. 해가 가려지고 비가 내리니 날씨도 삽시간에 추워져 스노클링 하던 사람들 전부 덜덜 떨며 물에서 뛰쳐나왔다. 우리도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이만 숙소로 돌아왔다.



산크리스토발에서의 마지막 날이니만큼 아직 보지 못한 기념품 가게를 전부 털어주겠단 마음으로 시내를 돌아다녔다. 아쉽게도 신타크루즈보다 종류가 적고 가격도 별 차이 없어 살 건 없었다. 이미 산타크루즈에서 인형도 왕창 산 나인걸... 엽서의 디자인이랑 재질이 딱 마음에 들었으나 한국에 돌아가기까지는 한참 남아 포기했다. 짐 옮길 때마다 빳빳하게 유지할 자신이 없다...



저녁은 어제 플라야 만으로 가며 지나쳤던 가게에서 먹기로 했다. 뷰가 괜찮아 보였고 가게에 달린 그네 의자에 앉아보고 싶었다. 그런데 일몰 시간보다 한참 전인 4시 반쯤 갔는데도 그네 자리는 꽉 차 있었다. 심지어 해도 반대 방향으로 져서 일몰을 보기엔 좋지 않은 위치였다. 우린 일몰에 큰 미련이 없어 조금 고민하다가 그냥 빈 바깥 자리에 앉았음.
가격은 무척 비싸다. 한국에서 한 끼 먹는 것보다도 비싼 듯함. 그런데 양은 무척 적다. 갈릭 소스를 끼얹은 문어 요리는 무려 18달러인데 문어가 나오는 양은 다리 3개뿐이다. 그리고 파타콘은 익히 보아온 튀김처럼 나올 줄 알았는데, 튀김을 야채와 계란과 으깨 리조또처럼 섞어놓은 듯한 음식이 나왔다. 문어는 소스가 맛있고 다리가 부드러워서 맛있게 먹었는데 파타콘은 계란 노른자를 생으로 섞었더니 느끼해서 많이 못 먹었다. 클럽 맥주는 그저 그런 평범한 맥주.
The Pier Restaurant & Cevicheria
The Pier Restaurant & Cevicheria · Puerto Baquerizo Moreno, 에콰도르
★★★★★ · 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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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인생 최악의 영화를 얘기하다 보니 해가 금방 지고 주변이 어둑어둑해졌다(나는 여전히 '내 심장을 쏴라'가 인생 최악의 영화다). 내일 아침은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빵집이 문을 안 닫았으면 빵을 사 가기로 했다. 다행히 빵집은 열려 있었고 빵도 종류별로 많이 남아 있었다. 친구가 맛있다고 감탄한 크림빵과 새로운 빵 종류 몇 개, 그리고 초코 도넛을 하나 골라 숙소로 돌아갔다. 도넛은 내가 상상한 맛은 아니었음. 질긴 식빵을 반 갈라 그 사이에 크림을 넣은 듯한... 하지만 재밌는 맛이었으니 됐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내일 아침 요거트와 먹을 과일 좀 사가려고 마트에 들렀다가 파인애플 한 통이 1.5달러라는 걸 발견해서 고민하다 사 왔다. 둘 다 파인애플 손질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먹겠다는 일념 하에 일단은 구매! 내가 씻고 나서 빈둥거리고 있자 친구가 열심히 블로그를 보고 파인애플 손질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희여멀건해서 실 것 같았던 파인애플은 무척 달아서 맛있었다. 남미에 오면 과일을 배 터지게 먹자. 싸고 맛있음!
3. 비용
- 숙소 - 23,000원
- 식사 - 저녁 16.5달러, 간식 2.25달러, 빵 2달러, 과일 2달러
- 관광 및 투어 -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