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루] 2일차 40시간의 버스 이동 끝에 드디어 도착한 고산지대 및 트래킹 성지 와라즈(Huaraz)

1. 일정
- 오전 12시-6시) 침보테에서 와라즈로 이동
- 오전 6시 반-오후 2시) 숙소 체크인 후 샤워하고 잠 보충
- 오후 3시-4시 반) 늦은 점심 먹기
- 오후 4시 반-6시) 투어사 돌아다니기
2. 사진과 감상
침보테 버스 터미널에서 시계만 바라보며 하염없이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 한시라도 빨리 이 비린내 나는 터미널에서 벗어나 버스에라도 오르고 싶었다. 그런데 11시 55분 예정이던 버스가 12시가 한참 넘어도 소식도 없는 거다. 다른 사람들은 버스 타서 다들 떠나고, 텅 빈 터미널에 나와 친구만 어리바리타며 앉아 있었다. 남미 대중교통은 연착이 심하다던데 지금까지는 크게 지연된 일정이 없어 까먹고 있었음... 하지만 지연이면 다행이지, 스페인어를 못 알아들어 버스를 놓쳤거나 한 거면 일정이 완전 꼬이기 때문에 속으로 진땀 엄청 흘렸다.
다행히 해당 버스 직원으로 보이는 분이 동떨어진 개이트에서 기다리던 우리를 인솔해줬다. 그리고 12시 20분쯤 기다리고 기다리던 버스가 왔다. 짐을 맡기고 2층으로 올라가서 좌석에 앉자마자 등받이를 최대로 눕히고 담요를 덮어 편하게 잘 준비를 했다. 지금까지 쉼 없이 달려왔고 이제는 마지막 버스를 타서 그런지 긴장이 풀려 정말 언제 잠이 들었는지 모를 정도로 잘 잔 것 같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퍼뜩 잠에서 깼다. 다리가 너무 시리고 버스 벽면이 너무 찼다. 너무 추워서 다시 잠에 들 수 없어 30분 정도 자다 깨다 반복하다 보니 버스가 멈췄다. 드디어 와라즈에 도착한 것이다.

버스에서 내리는데 너무 추워서 기절할 뻔했다. 얼른 짐을 받고 담요를 두른 채 엉성하게 배낭을 풀어 맸다. 다행히 버스 터미널과 숙소가 9분 정도로 무척 가까워서 걸어가는 건 어렵지 않았다. 숙소에는 전날 미리 얼리 체크인을 부탁해둔 상태라 가서 짐만 풀고 뻗기만 하면 된다.
웃긴 건, 와라즈에 오기 전 계속해서 고산병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는데 막상 정신없는 상태로 도착하니 고산병이고 뭐고 다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와라즈는 해발 3,000미터의 고산 지대에 위치한 도시라서 잘못하면 여기 도착하자마자 고산병을 겪을 수도 있는데, 이미 버스로 40시간 단련된 우리는 조금만 더 가면 푹 쉴 수 있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나와 와라즈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곳에 다다르자 탄성이 나왔다. 눈앞에 보이는 거대한 산들과 그 산에 빼곡히 들어선 작은 집들이 페루의 첫인상을 결정했다. 너무 마음에 들어서 잠시 동안 피곤함을 잊고 사진을 찍어대며 걸어갔다. 꼭 진한 색감의 요르단 암만 같기도 하고 돌로미티의 마을 같기도 했다.
숙소는 여기저기 평이 좋은 유니버설 호스텔로 잡았다. 와라즈는 핫-샤워가 가능한 숙소로 잡으라던데 날씨를 보니 그게 중요할 만하다. 숙소 계단으로 올라가니 할아버지가 우리를 맞아주셨다. 스페인어밖에 못하시지만 인상이 좋고 친절하심. 방 안내해주고 피곤할 테니 빨리 자라고 바디랭귀지를 하신다. 고맙다 하고 둘 다 서둘러 씻은 다음에 뻗었다.
Hostal Universal Huaraz
Hostal Universal Huaraz · Jiron, Hualcan 252, Huaraz, 페루
★★★★☆ ·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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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자고 일어나서 시계를 보니 오후 2시가 다 되었다. 아침도 안 먹고 자서 점심시간이 다 되어 눈이 뜨인 것이다. 그런데 일어난 지 30분쯤 되자 머리가 살짝 아파온다. 편두통 같기도 해서 조금 있으면 괜찮아지겠지 했는데 일어나서 돌아다니려니 속이 살짝 메스꺼웠다. 문제는 이게 40시간 버스 이동 때문에 쌓인 피로가 원인인지, 아침을 걸러 배가 고픈 게 원인인지, 그것도 아니면 고산병이 원인인지를 도통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일단 챙겨 온 약 중 애드빌 두 알을 먹고 버텨보기로 했다. 그 와중에 배가 고파서 친구 깨워서 점심 먹으러 나왔다. 고산병이면 밥도 많이 먹지 말랬는데ㅋㅋㅋㅋ


일단 장시간 이동 후 제대로 된 첫 끼니니 맛있는 곳을 가자고 해서 온 식당. 처음에는 많은 블로그에서 소개한 카레집을 갈까 했는데, 최근 평이 별로인 게 많아 고민하다가 평점이 높은 이곳을 선택했다. 그런데 식당에 들어서면서부터 내부가 너무 깔끔하고 신식이라 감탄했음. 음식 가격은 페루 물가에 비하면 엄청 비싼 3-40솔대이지만, 그만큼 퀄리티가 좋다. 한국에서 팔아도 잘 먹힐 수준의 맛이다.
내가 먹은 건 Sweetened Pork라고, 달콤 담백한 퀴노아 소스에 부드러운 닭고기를 얹은 요리인데 같이 나온 콩과 적양파 피클도 맛있었고 무엇보다 밥을 같이 줘서 좋았다. 친구는 페루 대표 음식인 로모 살타도를 비건식으로 시켰는데 이것도 진짜 맛있었다. 비건식이라서 고기 대신 버섯을 넣어줬는데 버섯이 향이 과하지 않고 부드러워서 감탄함. 여러모로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둘 다 배가 빵빵해져서 나옴.
Calima - Restaurant & Café
Calima - Restaurant & Café · Jr. Lucar y Torre N° 435, Huaraz 02001 페루
★★★★★ · 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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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도 채웠겠다 투어사도 둘러볼 겸 아르마스 광장 근처로 걸어갔다. 웃기게도 편두통은 밥을 배불리 먹고 나니 사라졌다. 그러면 이건 고산병이 아니라 그냥 배가 고파서 몸이 승질을 냈던 거다. 컨디션도 회복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와라즈 시내를 걸어 다녔다.
아르마스 광장은 남미 어디에서나 보이는 광장이라던데, 왜 다들 같은 이름을 쓰는지는 모르겠다. 더 유명한 아르마스 광장은 쿠스코의 광장인 것 같고, 와라즈의 광장은 조그마한 공원 같았다. 분수대 하나 정도가 중앙에 있고 그 주변은 그냥 번화가로 둘러싸여 있다. 생각보다 볼 건 없다.
아르마스 광장
아르마스 광장 · Huaraz 02001 페루
★★★★☆ · 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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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사를 둘러보며 가다가 길거리 소프트콘을 발견해서 하나 먹기로 했다. 근데 일단 가격이 비싸다. 치클라요 몰에서 먹은 든든한 소프트콘은 2.5솔이었는데 여기는 4솔이란다. 하지만 일단 먹기로 했으니 두 개 달라고 하는데, 맛도 안 물어보고 요상하게 생긴 콘을 꺼낸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내리는데 모양이 너무 이상했다. 그걸 보는 순간 아, 그냥 콘 모양 특이한 걸 봤을 때 다른 곳 갈 걸 하는 후회가 막 솟아올랐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한 입 먹는 순간 맛있어서 순식간에 분노가 누그러들더라. 그래도 비싸긴 함. 다시 먹을 생각은 없음.

우리는 와라즈에 도착하기 전 산타 크루즈 3박 4일 트래킹을 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 원래는 파론 호수, 69 호수 정도만 볼 생각이었는데 산타 크루즈 트래킹 풍경을 보니 트래킹을 하게 된다면 따로 호수를 갈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많이 빡빡해지는 일정에도 트래킹을 욱여넣을 생각이었는데... 상담하는 투어사들이 하나같이 너무 높은 금액을 부르는 게 아닌가. 2018년 기준 330솔 정도였는데 우리에겐 6-700솔을 부른다. 그리고 국립공원 입장료 60솔은 또 따로 부과한다. 심지어 산타 크루즈 트래킹을 취급하는 투어사가 현재 많이 줄어든 모양이다. 여러 군데 물어 결국 한 투어사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여기도 550솔까지만 깎아주고 60솔 입장료는 개인 부담이라는 것...
친구가 버스 이동을 하느라 체력도 떨어진 상태고, 무리한 일정을 밀어붙이기보다 여유를 조금 부리는 게 나을 것 같아 결국 산타 크루즈 트래킹은 포기했다. 대신 내일 파론(파라마운트) 호수 투어를 가기로 했다. 인당 50솔에 파론 호수 입장료 5솔은 개인 부담이란 설명만 간단히 듣고 영수증을 챙겨 받아 나왔다. 직원이 내일 집결은 Mirador 투어사 앞에서 한다며 위치까지 직접 알려줬다.
GANESA EXPLORER
GANESA EXPLORER · Avenue, Av. Mariscal Toribio de Luzuriaga 650, Huaraz 02001 페루
★★★☆☆ · 여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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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앞이 전부 시장이라 과일을 싸게 듬뿍 살 수 있었다. 상태가 안 좋은 과일도 많아서 싱싱한 걸 고르기는 힘들었지만 값이 저렴하니 괜찮았다. 일반 바나나보다 크기가 작은 바나나를 반 통 사고, 페루의 대표 과일이라던 루쿠마도 하나 사고, 오렌지와 사과, 그리고 애플망고 등을 더 샀는데도 도합 10솔을 안 넘었던 것 같다.
저녁을 해 먹기 귀찮은 탓에 요거트에다가 과일을 썰어 넣어 먹기로 했다. 사과는 푸석푸석해서 맛이 없었지만 애플망고는 꽤 달달했다. 루쿠마는 달달한 호박고구마 같은 맛이라던데 내가 고른 루쿠마는 덜 익었는지 단맛보다는 쌉싸름한 맛이 더했다. 맛있는 과일 잘 고르고 싶다...

그나저나 고산병에 대해 찾아보니 다양한 소문이 많더라. 고산 지대에 들어온 첫날은 자기 전에 샤워를 하면 안 된다느니, 밥을 많이 먹으면 안 된다느니 등... 그런데 생각해보면 난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샤워하고 개운하게 잤고, 자고 일어나서는 든든하게 배를 채웠고... 다행히 해발 3,000미터 정도에서는 고산병을 겪지 않아도 되는 걸까? 다만 내일 갈 파론 호수가 걱정이다. 69 호수나 파스토루리 빙하 투어보다는 쉽지만 여기도 4,000미터는 넘는 고산 지대이기 때문에. 아무쪼록 내일 투어할 때 컨디션이 좋았으면!
3. 비용
- 숙소 - 49솔
- 식사 - 점심 35솔, 길거리 과일 및 야채 5솔, 마트 15솔
- 교통 및 관광 - 파론 호수 투어 50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