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 갈라파고스 산타크루즈 섬
- 칠레 여행
- 바다사자
- 에콰도르 여행
- 그리스 여행
- 이탈리아 여행
- 라스베가스 여행
- 산크리스토발 섬
- 볼리비아 여행
- 푸에르토 나탈레스 여행
- 아르헨티나 여행
- 쿠스코 여행
- O 트래킹
- 타강가 여행
- 볼리비아 우유니
- 페루 여행
- 남미 여행
- 엘칼라파테 맛집
- 요르단여행
- 이탈리아여행
- 푸에르토 마드린
- 타강가 맛집
- 갈라파고스 여행
- 미국 여행
- la 여행
- 콜롬비아 여행
- 타강가
- 파타고니아 트래킹
- 돌로미티 여행
- 서킷 트래킹
- Today
- Total
딩동댕의 게임/여행라이프
[칠레] 14일차 O 트래킹 마지막 날 9일차 칠레노에서 삼봉 일출 보러 오르기/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돌아가다 본문

1. 일정
- 오전 2시-4시) 칠레노 산장에서 라스 토레스 정상 등반
- 오전 4시-6시 10분) 일출 기다리기
- 오전 6시 10분-8시) 칠레노 산장으로 복귀
- 오전 8시 반- 10시 10분) 칠레노에서 센트로 웰컴 센터 이동
- 오전 11시-오후 2시) 점심 식사 및 셔틀 대기
- 오후 2시-2시 10분) 셔틀로 아마르가까지 이동
- 오후 2시 40분-5시 반) 아마르가에서 푸에르토 나탈레스까지 이동
- 오후 6시-7시 20분) 저녁 식사
2. 사진과 감상
새벽 1시부터 깨서 한참을 침대에 누워 뒤척였다. 새벽 2시가 빨리 왔으면 했는데 시간이 참 안 가더라. 선잠에 들다 깨다 하다가 1층에서 자다 일어난 친구가 나를 깨우길래 일어났다.
피츠로이와는 다르게, 삼봉은 외국인들도 많이들 일출을 보러 간다. 방 문을 열고 나가기 전부터 바깥 복도에서 외국인들이 작게 잡담을 나누는 소리가 들렸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등산을 준비하고 있었다. 새벽 2시의 캄캄한 밤에 이렇게 조용히 시끌벅적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우리도 각자 경량패딩과 간단한 간식거리, 물 등을 챙기고 있는데 순간 우리 옆으로 헤드 랜턴을 한 외국인이 지나갔다. 우리는 헤드 랜턴이 없고 오로지 핸드폰 플래시에만 의존해야 했다. 마침 출발 준비도 대충 다 한 터라 헤드 랜턴 외국인을 놓칠세라 빠르게 따라 나갔다.
길도 잘 몰라서 삼봉까지 잘 찾아갈 수나 있을까 걱정했는데 성큼성큼 고민없이 걷는 외국인을 따라 뛰다시피 걷다 보니 어느새 삼봉 올라가는 곳이 틀림없는 길에 도착해 있었다. 중간에 외국인의 헤드 랜턴빛에만 의존해 따라 걷는 건 위험할 것 같아 급히 핸드폰 플래시를 켜 한 손에는 폴대 두 개를, 다른 한 손으론 핸드폰을 잡은 요상한 폼으로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걷다가 갈림길에서 우리의 소중한 랜턴 외국인이 멈췄다. 그러고는 헤드 랜턴을 조정하려는지 만지작거리며 서 있길래 우리는 널 뒤따라왔다고, 길을 모른다고 그랬다ㅋㅋㅋ 그러니 친절히 왼쪽으로 가면 된다고 알려주더라. 더 기다려도 먼저 갈 생각이 없어 보여 어영부영 출발했다.
다행히 피츠로이 산길보다는 훨씬 길다운 길이 쭉 이어졌다. 내가 가는 곳이 길인지 아닌지가 잘 구분이 되어 다행이었다. 핸드폰 플래시만으로도 길 구분이 되어 나쁘지 않았음.
처음 몇 분 동안은 오르막길 내리막길도 가파르지 않아 쉬지 않고 열심히 걸었다. 중간에 계곡과 가까워진 듯 물소리가 커지더니 다리도 몇 개 건너야 했다. 다리를 건너면서 무심코 머리 위를 올려다 보는데, 하늘에 별이 진짜 선명하고 빽빽하게 보여서 놀랐다. 구름 한 점 없이 정말 맑은 하늘인가 보다 싶어 기분이 좋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니 아까의 헤드 랜턴 외국인이 우리 뒤로 따라붙었다. 한동안 셋이서 나란히 산길을 걸었다. 쭉 가다가 경사진 오르막이 자주 나오길래 좀 쉬었다 가려고 멈추니 뒤에 있던 외국인이 지금까지 길 잘 찾았어! 더 힘내! 라고 하는 거다ㅠㅠ 난 쉬고 싶은 건데... 내가 멈춰서 앞으로 안 가니 외국인도 덩달아 멈춰서 더 걷질 않길래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중간에 우리가 어디까지 왔는지 표지판도 하나 봤는데, 열심히 걸었는데 겨우 요만큼? 싶을 만큼 적게 올라왔더라. 그런 표지판은 안 보이게 두는 게 맞다... 어쨌든 올라갈수록 숲 속에서 플래시 빛이 한 두개씩 보이던데 내심 반가웠다. 다들 일출 보려고 새벽부터 부지런히 올라가는구나.
어느 순간 길이 살짝 험난해졌다. 다리를 쫘악쫘악 찢어야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나오는가 하면 미친 경사도의 흙길이 그 뒤를 이어 나타났다.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땀이 정말 줄줄 났는데, 곧바로 매서운 바람길을 지나야 해서 땀이 싹 식었다. 그리고 뻥 뚫린 길을 지나 새벽엔 공식적으로는 닫아 두는 세로 파이네 전망대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이제 진짜 삼봉을 오르는 길이 시작된다.
처음에 전망대 입구를 못 찾고 이상한 숲길에서 헤매는 우리를 보더니 뒤따라오던 랜턴 친구가 여기서부터는 본인이 앞장서겠다고 했다. 그런데 전망대 입구부터는 정말 극악의 경사도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고르지 않은 돌로 이루어진 계단을 밟고 쭉 올라가면서 정말 힘들었다. 땀을 너무 흘리니 갈증이 제일 문제였다.
결국 중간에 쫄쫄 흐르는 계곡물에서 한참을 멈춰 물을 몇 병이나 마셨다. 랜턴 외국인은 기다리다가 다른 사람들을 따라 먼저 올라갔음. 물도 먹었으니 다시 힘내서 올라가 보려는데 힘든 건 여전했다. 한참 동안 아무 생각도 못하고 기계적으로 올라가기만 했다. 가끔 멈춰서 쉴 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봤는데 아래에서보다 별이 안 보였다. 우리가 가는 방향은 구름이 좀 있나 싶어 살짝 불안하다.
앞서가던 친구 앞으로 탁 트인 풍경이 보이길래 설마 정상일까 설레발을 쳤지만 친구가 가리킨 더 위쪽에는 사람들의 행렬이 분명한 플래시들이 있었고... 이제 돌과 흙 계단은 자갈길로 바뀌었다. 탁 트인 곳에서 오른쪽으로는 휑한 낭떠러지 바람소리를 들으며 미끄러운 돌길을 올라가야 한다니. 난이도가 점점 정도를 모르고 치솟고 있었다.
자갈길을 걸어 언덕 하나를 오르고 나니 이제 큼지막한 돌무더기로 이루어진 길이 나타났다. 여기 길이 맞냐는 질문을 입에 달고 다니며 걸었다. 분명 길이 아닌 것 같은데 저 멀리에는 붉은색 이정표가 보이고. 그나마 다행인 건 돌들이 큼직큼직해서 미끄러져 굴러떨어질 걱정은 좀 덜었다는 것이다. 거의 사족보행을 해야 한다던 사람들의 말이 이해가 됐는데, 우린 폴대와 핸드폰을 들고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이족보행을 해야 했다... 헤드 랜턴이 무척 부럽더라.
한참 동안 돌들을 타고 넘어 앞서 간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도착했다. 눈앞에 삼봉이 보인다! 그런데 호수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여기가 정상이냐고 묻자 다른 사람들도 뷰가 좀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길을 더 찾아봐야 한다며 두리번거린다. 도착 시간은 오전 4시쯤, 일출까지는 아직 시간 여유가 많으므로 주변을 좀 둘러보기로 했다.


다행히 오른쪽에 있던 붉은색 이정표를 찾아 옆으로 쭉 돌아가니 호수로 내려가는 길이 나타났다. 다들 힘든 것도 잊고 뛰다시피 내려가더라. 어두운 밤임에도 눈앞에 펼쳐진 삼봉과 호수는 멋있었다. 거대한 그 모습이 사진으로 볼 때보다 더 웅장해서, 잠시나마 피츠로이를 잊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환호도 잠시, 피츠로이 정상에서처럼 삼봉 정상도 바람이 장난 아니었다. 왠만하면 추위를 버티면서 사진 찍는데, 여기서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있기도 너무 힘들었다. 친구는 더한 추위를 예감했는지 남는 시간 동안 돌을 쌓아 간이 벽을 만들었다. 괜찮은 생각 같아서 나도 한동안 같이 벽을 만들었음. 다른 사람들도 각자 바람을 피할 곳을 찾아 흩어졌고, 몇은 타임랩스를 위해 카메라를 좋은 자리에 세팅하느라 바람을 뚫고 돌아다녔다. 일출을 기다리는 동안 헤드 랜턴 친구와도 다시 만나 통성명을 했다. 그는 호주에서 온 엉콜이란다.


일출 시간이 가까워지자 더 많은 사람들이 정상에 쏙쏙 도착했다. 날은 조금씩 밝아오기 시작하고, 어둡기만 하던 삼봉이 눈에 선명히 들어온다. 그런데 아까부터 삼봉 끄트머리에 걸려있는 구름은 사라질 기미가 없다. 오히려 일출이 가까워질수록 더 뿌옇고 짙어지는 느낌.
그리고 빛이 점점 들어오는데, 삼봉이 빨갛게 타오르지가 않는다. 옆에 있던 엉콜이 아마 해가 뜨는 쪽에 구름이 많아 그럴 거라며,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아마 볼 수 있을 거라고 하던데 그 말을 너무 믿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바람은 더욱 세지고, 진짜 피츠로이에서보다도 추워서 오들오들 떨면서 기다려야 했다.


한참을 기다렸을까, 순간적으로 삼봉 옆의 암석이 확 붉어지는 게 보였다! 삼봉을 노려보며 저게 붉어지는지 아닌지 어떻게 알지, 지금도 약간 붉은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하다가 그 모습을 보니 헷갈릴 수 없겠더라. 그런데 암석의 붉은 빛이 사그라드는데도 삼봉 쪽은 미동도 없다. 아무래도 오늘은 붉은 삼봉은 못 볼 모양이다.



춥기도 하고, 실망해서 내려가려는데 엉콜이 붙잡았다. 한 5분만 더 기다려보면 붉은 삼봉을 볼 수 있을 거라고 꼬신다. 속는 셈 치고 다시 돌벽 안에 앉아 기다리는데 삼봉에 한 줄기 빛이 비치더라. 그 빛은 붉은 색이 아닌 주황색이었고... 정말 한 줄기 비치다가 그마저도 금새 꺼졌다. 붉은 삼봉은 오늘 못 보는 게 확실했다. 너무 추워서 얼어죽기 전에 내려가야 했다.

그 와중에 친구가 이그아누스를 닮은 사람을 저 아래서 봤다길래 설마 했는데, 진짜로 세바스찬 무리였다. 센트로에서 일출을 보러 올라온 것이다. 충격을 받은 우리는 몇 시쯤에 출발했냐고 물었는데 오전 12시 40분쯤 출발해 4시쯤 도착했다는 미친 답변을 받았다. 이 친구들이야말로 치과 의사와 공대생이 아닌 체대생 아닐까.
바스티온과 이그아누스는 춥다고 벌벌 떨면서도 삼봉 바위 위에서 사진을 찍겠다고 난리법석을 피우더라. 형과 동생 사이가 무척 좋아 보였다. 둘이서 이것저것 재밌는 포즈를 취하고 업히기까지 하는 걸 보니 즐거워 보였다. 나도 나중에 동생이랑 여행 다니면서 저렇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전 6시가 되어도 삼봉의 구름은 여전하고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이쯤에서 깔끔하게 내려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날이 밝아 우리가 어떤 길을 올라왔는지 볼 수 있었는데 길이 예상보다도 험해서 놀랐다. 그냥 돌무더기를 요리조리 밟고 다니며 삼봉까지 올라온 건데 이걸 길이라고 표시할 생각을 했다는 게 신기할 만큼 무질서했다. 돌아가는 길도 무척 험난했음.




길을 잃고 어디로 내려가야 하지 요리조리 둘러보면 저 멀리 빨간색 이정표 스틱이 보이는데, 그곳까지 가는 멀쩡한 길은 안 보이는 순간이 허다해서 어이없었다. 왼쪽을 내다보면 까마득한 자갈 내리막길이 보여서 걸으며 계속 감탄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모르고 올랐으니 망정이지 보면서 올랐으면 좀 쫄았을 듯.



돌무더기 길이 끝나고는 무릎 연골이 작살나는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심지어 그런 내리막길이 엄청 길어서 한참을 내려가도 끝이 안 난다. 올라오는 길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끝을 모르니 버티면서 걸을 수 있었는데, 내려가는 길은 그게 되지 않으니 더 힘들다. 친구와 언제까지 걸어야 하냐는 물음을 반복하며 한참을 좀비처럼 걸어다닌 것 같다.



새벽에 전망대로 올라가며 보고 충격받았던 표지판을 다시 만난 순간 좀 행복했다. 거의 다 내려왔다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음. 근데 아니었다. 이 표지판을 보고도 한참을 더 걸어가야 했다. 심지어 마지막엔 오르막이 몇 번 더 있었는데, 내가 새벽에 이 정도 경사의 내리막을 내려간 적 있었나 싶을 정도로 새로웠다.

저 앞에 산장이 보이는 순간 드디어 끝났구나 싶었다. 전망대에서부터 같이 내려오던 세바스찬 무리는 이제 안중에도 없었다. 중간부터는 너무 힘들어서 산장으로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그냥 우리 페이스대로 우다다 내려왔더니 보이지도 않음ㅋㅋㅋ



산장에 도착하자마자 새벽부터 갈증 때문에 엄청 마시고 싶었던 탄산 음료를 하나 사서 바깥 테이블에 앉아 쉬었다. 산장 체크아웃 시간인 오전 9시 반보다 한참 일찍 돌아왔기도 하고, 칠레노 내 식당 오픈 시간은 오전 10시부터이기 때문에 그냥 센트로로 돌아가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우리가 내려온 길을 돌아보니, 삼봉이 있을 산봉우리가 이젠 온통 먹구름투성이더라. 적당히 버티다 잘 내려왔다 싶었다.



센트로로 내려가는 길은 칠레노와 이어져 있는 초반 협곡만 빼면 편했다. 칠레노 산장까지 올 때는 협곡을 따라 쭉 내려가기만 하면 되어 편했는데 나갈 땐 다시 급경사 언덕들을 올라가야 해서 정말 힘들었다. 한 외국인과 같이 헉헉대며 뒤쳐져서 열심히 올라감.



이후로는 쭉 내리막길. 이 내리막길도 초반만 평이하지 중간에는 꽤 급경사라 오늘도 어김없이 무릎이 작살나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내리막길을 다 내려가면 평지가 한참 나오는데 오늘 삼봉을 보러 올라갔다 와서 그런지 아니면 그동안 트래킹 피로가 누적이 된 건지 나중이 되니 평지조차도 걷기 힘들더라.



칠레노에서 내려오는 길은 다시 만난 세바스찬 무리와 함께했다. 삼봉 전망대에서 내려오는 건 느리더니 칠레노에서 센트로 가는 길에선 날아다녀서 쫓아가느라 힘들었다. 세바스찬은 주머니에 손 꼽고 뛰어다니던데 뒤에서 보면서 감탄스러웠다. 걷다 보니 저 멀리 센트로 호텔이 보이고, 동쪽에서 서쪽으로 W 트래킹을 하는 사람들이 다리를 건너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는 지점이 나왔다.


거의 폴대에 의존해 가며 걸어가는데 가도 가도 센트로가 안 나오는 거다. 힘들어서 H가 조언해줬던 센트로 호텔 무료 와이파이도 못 쓰고 지나쳐야 했다. 겨우 센트로에 도착해서 식당이 어디 있냐고 물어 갔는데 그 식당도 오후 2시에나 영업을 시작한단다. 결국 셔틀 타는 장소인 센트로 웰컴 센터까지 가야 했다.

가는 동안 이제 진짜로 트래킹이 끝나는구나 싶어 괜히 길을 여러 번 돌아보았다. 이제 푹 쉴 수 있더니 꿈만 같기도 하고 그동안 파타고니아에서 본 게 너무 많아 살짝 아쉽기도 하고... 확실한 건 O 트래킹을 할 수 있었어서 너무 다행이라는 것이다. 웰컴 센터에 도착하니 이 길고 길었던 트래킹에 마침표를 찍은 것 같아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일단 배가 고파서 웰컴 센터에서 각자 6,000페소짜리 콩고기 토마토 피자 하나씩을 시켜 앉았다. 1인용 크기라길래 크기는 별로 기대 안 했는데 생각보다 커서 만족하는 순간 친구가 먼저 먹고 인상을 찌푸림. 먹어보니 소스가 거의 안 발려 있어 진짜 맛이 없었다... 고추장이 옅게 발린 빵을 먹는 것 같은 느낌.
Torres Del Paine Welcome Center
Torres Del Paine Welcome Center · Chile Sudamérica, Torres de Paine, Magallanes y la Antártica Chilena, 칠레
★★★★★ · 관광 명소
www.google.com


그래도 배는 채워야 사니 한 판 열심히 먹고... 카운터에 돌아가는 셔틀이 언제 오냐고 물어봤다. 나는 돌아가는 셔틀 정도는 30분마다 한 대 정도 자주 있을 줄 알았더니 다음 셔틀은 2시간 정도 뒤인 오후 2시에나 온다고 해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우리가 산 나탈레스행 버스 티켓은 오후 8시 표로, 셔틀을 타고 가 봤자 5시간은 기다려야 한다고. 이게 문제였다. 웰컴 센터와 연계하고 있는 버스 회사는 버스 수르밖에 없고 나탈레스로 돌아가는 버스가 자주 있는 것도 버스 수르밖에 없는데 우리는 첫날 바보같이 다른 쩌리 회사를 선택해 버린 것.
셔틀 시간인 오후 2시까지 계속 고민하다가 결국 버스 수르 티켓을 새로 사기로 했다. 차라리 나탈레스에 일찍 가서 많이 쉬는 게 낫지, 여기서 버텨봤자 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었다. 피같은 9,000페소짜리 티켓을 버리고 10,000페소짜리 새 버스 티켓을 샀는데 아까운 와중에 나탈레스에 일찍 돌아갈 수 있으니 좋다.



그렇게 오후 2시 셔틀에 타서 처음에 우리가 셔틀을 탔던 장소인 아마르가에 도착했고, 30분 정도 기다려 나탈레스행 버스에 탈 수 있었다. O 트래킹을 시작하는 날엔 이곳에서 삼봉이 훤히 보였는데, 오늘은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오후에 삼봉 보러 올라가는 사람들은 봉우리조차도 보기 힘들어 보인다. 붉은 삼봉은 못 봤어도 일찍 가서 삼봉 본 게 다행인 듯하다.

나탈레스행 버스에서는 거의 기절하다시피 잠들어서 기억이 없다. 나탈레스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5시 정도로, 도착하자마자 숙소로 이동해 그동안 맡겨둔 짐을 찾고 미리 예약하고 간 방으로 안내받아 배낭을 풀었다.
그리고 대여한 캠핑 장비를 반납하러 대여점으로 갔다. 그동안 우리의 속을 썩이던 스토브에 대해서 말하고 환불을 요구했는데, 긴 설전이 오갈 줄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직원이 스토브에 가스를 연결해도 점화가 안 되는 걸 직접 확인하고는 바로 환불해줬다. 하루에 1,500페소씩 총 9일 대여 비용인 13,500페소를 바로 환불받음! 큰 기대는 안 했던 우리는 꽁돈을 받은 것 같아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동안 다른 사람들한테 불 빌리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미화되었음.



장비까지 해결됐으니 이제 남은 건 배 채우기. 트래킹 내내 생각나던 나탈레스 일식집 유메의 롤. 오후 6시부터 다시 연다기에 6시 1분이 되자마자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우리가 첫 손님인 완벽한 시간이었다.
친구는 처음에 먹었던 버섯 튀김 롤과 미소 된장국을 시켰고, 나는 E가 추천한 야채 튀김과 궁금했던 뉴욕 롤을 시켰다. 뉴욕 롤은 연어에 크림 치즈, 아보카도가 들어간 롤이었는데 생각보다 생연어가 많이 들어가서 내 취향은 아니었다. 하나도 안 비리고 맛있긴 해서 연어 좋아하면 잘 맞을 듯. 야채 튀김은 내가 상상한 정통 일식 튀김류는 아니었지만 칠리 소스와 얇은 튀김옷이 맛있었다. 새우 튀김인 줄 알았던 건 당근 튀김이었는데 신기하고 맛남. 브로콜리랑 컬리플라워 튀김이 대부분이다. 무엇보다도 같이 나온 밥에 참기름을 둘렀는지 너무 맛있어서 밥만 퍼먹어도 좋았음ㅠㅠ 맥주도 물같이 훌훌 들어갔다. 그래서 마지막에 계산할 때 망설임없이 10퍼센트 팁도 줬다.

완전 배불리 먹고 나니 걷기도 힘들 정도가 되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슈퍼를 들러 음료수나 사갈까 했는데 아까 환불받은 현금 13,500페소가 남은 게 생각났다. 어차피 내일이면 아르헨티나로 가니 칠레 페소가 남아봤자 쓸데없어 슈퍼에서 전부 탕진하기로 했다.
내일 아침 간단히 먹을 요거트와 과자류, 그리고 음료수 등을 사고 트래킹 둘쨋날 가브리엘이 우리에게 나눠주고 제임스가 쓰레기통에서 꺼내 준 그 맛있던 만테콜 과자도 발견했다. 친구는 두 개, 나는 세 개를 사서 신나게 숙소로 돌아갔다.
짐 정리는 내일 아침의 내게 맡기고 우선 깔끔히 씻은 다음에 1층 소파에 퍼졌다. 따뜻하고 넓고 와이파이 잘 되는 깔끔한 숙소에 누워 있자니 트래킹했던 게 정말 꿈같이 느껴진다. 가위바위보에서 이겨서 넓은 싱글 베드 방을 쓰게 됐는데 푹신한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니 천국이 따로 없더라. 누워만 있어도 피곤함이 싹 가셔서 행복했다.
3. 비용
- 숙소 - 25,000페소
- 식사 - 콜라 4,000페소, 셔틀 티켓 3,000페소, 피자 6,000페소, 환타 3,000페소, 저녁 18,600페소, 환타 990페소
- 관광 및 투어 - 푸에르토 나탈레스행 버스 10,000페소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르헨티나] 10일차 리오 가예고스에서 푸에르토 마드린 도착/아르헨티나에서 아바타 2 단돈 4,000원에 보기 (0) | 2022.12.24 |
---|---|
[아르헨티나] 9일차 칠레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아르헨티나 리오 가예고스로 이동, 극적으로 푸에르토 마드린행 티켓 구한 날 (0) | 2022.12.23 |
[칠레] 13일차 O 트래킹 8일차 프란세스에서 칠레노까지 16km, 트래킹 중 첫 산장 숙박 (0) | 2022.12.22 |
[칠레] 12일차 O 트래킹 7일차 파이네 그란데에서 프란세스까지 10km, 중간에 프란세스 전망대도 구경 (2) | 2022.12.21 |
[칠레] 11일차 O 트래킹 6일차 그레이에서 파이네 그란데까지 11km 근육통에 허덕이며 걷기 (0) | 2022.1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