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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3일차 최고였던 와라즈 파론(파라마운트) 호수 투어/진한 옥빛 호수 물빛 보러 전망대 네 발로 기어올라가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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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3일차 최고였던 와라즈 파론(파라마운트) 호수 투어/진한 옥빛 호수 물빛 보러 전망대 네 발로 기어올라가기

딩동빵 2022. 11. 6.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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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없이 사진과 똑같은 색깔이었던 파론 호수


1. 일정

  • 오전 7시-8시) 아침 식사
  • 오전 8시-10시) 카후아즈 마을까지 이동 후 20분 휴식
  • 오전 10시-12시 반) 파론 호수 입구 도착
  • 오전 12시 반-오후 2시 반) 파론 호수 자유시간
  • 오후 2시 반-4시 반) 점심 식사
  • 오후 4시 반-7시) 융가이 마을 찍고 와라즈 복귀
  • 오후 7시 반-8시) 한식 구매
  • 오후 8시-9시) 저녁 식사


2. 사진과 감상

코카차 한 잔 우려 마시기
호스트 할아버지가 해주신 소세지 스크램블드 에드


  오늘은 파론 호수 투어가 오전 8시부터 시작되어 한 시간 일찍 일어나 호스텔 조식을 챙겨 먹었다. 와라즈의 아침은 무척 추웠다. 호스텔이 다른 건 다 좋은데 방에 히터 시스템이 따로 없다는 게 아쉬움. 그래도 덜덜 떨며 계단을 내려가니 할아버지가 상을 이쁘게 차려놓으셨다. 오늘은 와라즈에 도착 후 첫 투어이다 보니 컨디션이 어떨지 몰라 코카 차도 한 잔 마시고, 빵이랑 스크램블드 에그를 든든히 먹어두었다. 빵은 공갈빵처럼 속이 텅 비어있는 신기한 종류였는데 버터를 발라 먹으니 나름 맛있었다.


우리의 파론 투어를 책임지는 K2 페루 어드벤쳐 투어


  밥 맛있게 먹다 말고 긴장을 했는지 배가 아파 화장실에 들렀다가 오전 8시가 되어 부랴부랴 투어차량 픽업 장소로 이동했다. 우리는 8시가 넘어 도착해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픽업 장소에 가서도 5분은 기다렸던 것 같다ㅋㅋ 픽업은 투어차량이 가까운데서부터 한두 명씩 차례로 픽업하던데 불행히도 우리는 맨 처음 픽업 대상이었음. 조금 더 농땡이 부리다 나올 수 있었는데 아쉽다.


카후아즈(Cahuaz) 마을의 중심 건물
파릇파릇한 색감이 아름다운 작은 공원


  우리가 탄 차량에는 외국인이 얼마 없었고 대부분 현지인에다가, 외국인들도 스페인어를 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 가이드도 스페인어로 설명을 해줬다. 처음에는 열심히 이해해보려고 단어라도 조각조각 주워듣다가 결국 이해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닫고 그냥 잤다. 오늘 투어 일정에 대해 설명하는 것 같은데 내릴 때 되면 내리라 하고 이동할 때 되면 이동하라 하겠지 싶었다.

  1시간 반쯤 이동하다가 차가 멈춘 곳은 한 마을이었다. 파론 호수로 가는 길목에 있는 카후아즈(Cahuaz)라는 곳인데 조그마한 고산 지대 마을 같았다. 가이드가 이곳에서 20분 정도 마을을 구경하고 돌아오라고 영어로 따로 말해줌. 작은 공원과 고풍스러운 건물 하나 정도가 볼거리의 전부였고 그 외에는 그냥 현지인들이 거주하는 마을이었다. 공원 자체는 와라즈의 아르마스 광장보다 이쁘긴 했다.


PLAZA DE ARMAS CARHUAZ

PLAZA DE ARMAS CARHUAZ · P993+7FX, Carhuaz 02127 페루

★★★★★ · 관광 명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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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만 있어 살짝 크리피했다
귀요미 알파카들이 진열되어 있다


  투어차가 주차한 곳 바로 앞에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었는데 비싸기도 하고 끌리는 맛도 없어 우리는 기념품이나 구경하기로 했다. 와라즈에는 딱히 기념품을 구경할 시장이 없어 페루의 기념품다운 기념품은 여기서 처음 보는 거였다. 페루 하면 바로 떠오르는 알파카 인형도 이곳에서 처음 봤다. 살짝 만져봤는데 털이 진짜 복슬복슬해서 만지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전부 데려오고 싶었는데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 근처 시장이 구경할 게 더 많대서 겨우 참았다. 심지어 2019년 블로그 기준 큰 녀석이 20솔 정도였는데 지금은 40솔 정도로 가격이 두 배나 뛰었다. 친구는 알파카 대신 귀여운 털모자 키링을 단돈 5솔에 하나 샀다.


마을을 벗어나 산길을 오르며 본 풍경


  행복한 기념품 구경을 마치고 다시 버스에 탑승해 한숨 자려는데 마을을 벗어나 흙길을 오르기 시작하니 주변 풍경이 확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좁은 흙길 주변에 작은 집들이 드문드문 나오더니 어느 정도 올라가니 드넓은 산군이 펼쳐진다. 풍경이 너무 시원해서 차 문을 열고 바람을 맞으며 달렸다. 하늘을 보니 오늘은 날씨도 좋아 이쁜 파론 호수를 볼 수 있을 것 같아 슬슬 기대가 되더라.


번역기도 포기한 번역


  그렇게 열심히 바깥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가이드가 일어나더니 무언가 설명을 시작했다. 뻥 뚫린 풍경도 끝나고 다시 좁은 돌길로 들어간 참이라 이번에도 그냥 무시하고 자려고 하다가, 기껏 해주는 설명 하나도 이해 못 하고 가려니 아쉬워서 번역기를 돌려보았는데... 번역 결과를 보고는 깔끔히 포기했다. 심지어 가이드의 열정 어린 설명은 점점 고조되어 내 얼굴에 침이 튀기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파론 호수는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길고 길이 험해서 힘들다던데 나는 다 모르겠고 침 공격(feat. 이야?)을 견디기가 힘들었음.


초록초록한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는 고산 지대 평원
저 멀리는 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산군이 있다
살짝 두근거리는 점심 메뉴 고르기


  가이드의 설명을 정신없이 듣다 보니 어느덧 산 중턱까지 올라와 있었다. 파론 호수까지 얼마 안 남은 듯했는데 여기서 또 잠시 내렸다 간다. 파론 호수를 갔다가 내려올 때 이곳에서 점심을 먹을 거라며, 점심 메뉴를 미리 정하라고. 나는 로모 살타도를 시켰고 친구는 고기를 뺀 볶음밥을 시켰다. 그러고 나서 남는 시간 동안 식당 주변 경치를 둘러보았는데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풍경에 신이 났다.


올라온 길도 무척 험하다
하지만 남은 길은 더 험할 예정


  다시 차를 타서 남은 길을 가는데, 과연 파론 호수로 가는 길이 험하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여기서부터는 온통 구불구불한 커브길인 데다가 옆으로는 깎아지른 높은 절벽뿐이라 차라리 눈을 감는 게 낫다. 도로 상태도 좋지 않아서 우리 앞에 앉은 외국인 한 명은 차가 좌우로 기울 때마다 저항 없이 펄럭펄럭 흔들렸다.


파론 호수 입구에 걸려 있던 페루 깃발


  한참 더 달려서 파론 호수 입구에 도착했다. 파론 호수 입장료는 인당 5솔. 페루에서는 보통 관광지 입장료가 투어비에 포함되지 않고 투어 시작 후 가이드가 현금으로 걷는다. 공원 입구에 도착해서 요금을 내면 국립공원 직원이 차 안에 몇 명이 있는지 직접 확인하고 통과시켜준다. 파론 호수는 입장료가 저렴한 편이지만 69 호수나 파스토루리 빙하는 30솔이나 하더라.

파론 호수가 언뜻 보이던 순간
정말 사진 그대로의 색감을 가진 파론 호수


  그렇게 조금 더 달려 이제 정말 더 이상 차로 올라갈 수 있는 고지대가 없다고 생각했을 때 오른쪽 창문으로 밝은 호수가 보이기 시작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사람도 창 밖으로 비현실적인 물빛을 보았는지 감탄사를 연발했다. 나도 바보처럼 웃으며 '우와'라는 말만 반복했다. 사진에서 본 하늘색 옥빛 호수 그 자체였다.


Paron Lake

Paron Lake · 02165 페루

★★★★★ ·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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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설산과 푸른 호수 물빛의 미친 조화
전망대까지 안 가고 봐도 감탄만 나온다


  색깔이 미쳤어! 친구랑 방방 뛰며 그렇게 외쳤다. 심지어 호수 뒤에 우뚝 솟은 하얀 설산과 호수의 비현실적인 푸른 색감의 조화가 말도 안 되게 아름다웠다. 에콰도르에서 그 길고 지루한 시간을 견뎌 페루에, 그것도 와라즈에 온 게 너무나 행복해지는 순간이었다. 파론 호수는 69 호수보다 안 이쁘니 볼까 말까 한참 고민하던 과거의 나야... 파론 호수 오겠다고 마음 바꿔서 고마워.


파론 호수 전망대로 가는 길
악명 높은 전망대이지만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다


  한참 행복에 겨워 사진을 찍고 둘러보고 있자 가이드가 이제 다들 전망대에 올라가 봐야 하지 않겠냐며, 지금이 오후 12시 반이니 2시 반까지 2시간 동안 열심히 올라가 보라고 한다. 안 그래도 전날 파론 호수 투어에 대해 알아본 결과 '파론 호수'하면 뜨는 대표적인 사진은 전망대에 올라야 볼 수 있다는 걸 확인했다. 하지만 파론 호수 전망대는 네 발로 기어가야 할 정도로 아슬아슬하다는 평도 많아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길을 올려다보니 사람들이 많이들 올라가기도 하고, 여기까지 와서 도전도 안 해보는 건 아깝더라. 그래서 결국 모르겠다! 가자! 하고 올라갔다.


전망대까지 오르는 초반 길은 자갈길이다
올라가다 뒤돌아 보면 엄청난 규모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일단 초반 길은 큰 돌계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파론 호수 자체도 높은 고산 지대이다 보니 걸음을 크게 크게 해서 올라가는 게 생각보다 숨이 찼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어도 초반에서부터 힘이 드니 끝까지 올라갈 수 있나 조금 걱정이 되더라. 친구는 기념비가 있는 곳에서 한참 쉬었다 올라왔는데, 이후 말하기론 그때 그냥 내려갈까 한참 고민했다고ㅋㅋㅋ

  돌계단을 지나고 나면 오르막 자갈길이 이어진다. 트래킹화 챙겨 오기를 정말 잘했다 싶을 정도로 미끄러워서 조심조심 올라가야 했다. 물론 고산병에 걸리기 싫어서 최대한 천천히 올라가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느 정도 올라가서 뒤를 돌아보면 가슴이 뻥 뚫릴 만큼 넓고 까마득한 풍경이 보인다.


까마득히 이어져 있는 설산
하얀 눈과 메마른 자갈밭의 조화가 멋지다


  올라가는 동안에도 오른쪽에 큰 설산과 깎아지른 듯한 절벽 지형이 계속해서 시선을 빼앗았다. 다행히 걷다 보니 처음에 심장이 빨리 뛰고 숨이 차던 게 많이 나아졌다. 아침에 먹은 코카 차가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고, 천천히 걷고 숨을 크고 느리게 들이마쉰 덕분일 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파론 호수에서는 고산병 때문에 고생할 일이 없겠다 싶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게 길인지 돌산인지


  그런데 고산병에 적응하자마자 새로운 시련이 닥쳐왔다. 자갈밭이 끝나고 이제는 온통 커다란 돌로만 이루어진 길이 나타난 것이다.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사방에 돌밖에 없는데, 저 앞을 보면 사람들은 알아서 잘들 올라가고 있다. 입이 떡 벌어지는 풍경이다... 심지어 왼쪽에는 호수, 오른쪽에는 설산과 돌밭이라 한 번이라도 발을 잘못 삐끗하면 골로 갈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네 발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파론 호수 전망대 팻말에 도착했다


  두 손으로는 앞에 있는 돌을 잡고 양 발로는 조심조심 움직여가며 겨우 전망대 팻말에 도착했다. 그 와중에 나보다 더 겁을 먹은 사람이 앞에 가는 걸 보고 조금의 위안을 얻었다. 팻말에서 사진 몇 장 찍고 있으니 가이드가 조금 더 올라가면 더 멋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단다. 내가 봐도 팻말 근처에서는 멋있는 호수 사진을 못 찍을 것 같았다. 그럼 어쩔 수 없이 더 올라갈 수밖에.

Mirador Laguna Paron

Mirador Laguna Paron · X8X9+VFQ, Caraz 02165 페루

★★★★★ · 명승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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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벌리고 감탄만 했던 파론 호수 뷰


  열심히 또 네 발로 기어 올라가니 보상이 주어졌다! 사람들이 모여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 절벽 근처 바위가 보여 덜덜 떨며 다가가니 정말 멋있는 파론 호수의 풍경이 나를 반겼다. 몇몇 대담한 사람들은 사진에 찍힌 저 돌 위에 올라가 서서 사진을 찍던데, 나는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 두 다리를 믿기에는 나는 자주 발목을 삐끗한다.


하늘도 맑아서 더 아름답게 빛나던 호수
보정한 색감 절대 아니고 두 눈에 비친 색감 그대로이다
조금 더 올라가서 찍은 파론 호수


  그래도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질리도록 사진을 찍어서 여한은 없다. 내 쫄보 심장이 허락하는 만큼만 움직였다ㅋㅋ 무서운 와중에도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우니까 집중해서 찍다 보면 또 두려움이 잠깐 사그라들기도 하고. 역시 두려움은 고산병을 이기고, 몰입은 두려움을 이긴다.

구름 그림자가 호수에 비치기도 하더라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 그림자가 호수에 그대로 반영되기도 하던데 신기하더라. 그래도 여기 진짜 얕보면 안 되는 게, 중간에 관광객 한 명이 큰 돌들 사이 틈에 빠졌음. 사람들이 돌 옮겨가며 그 사람을 빼내 주려고 애를 써서 다행히 잘 빠져나왔지만,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트래킹화가 아니라면 큰 돌에서도 잘 미끄러질 수 있어 위험하니 신발만이라도 잘 챙겨 오는 게 좋을 듯하다.


올라온 길로 내려가야 한다
저길 어떻게 올라갔던 걸까


  내려가려면 올라온 길을 돌아 내려가면 된다. 그런데 사방에 디딜 게 돌밖에 없다면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가는 게 더 힘들다. 덕분에 허벅지 운동 제대로 하면서 다시 네 발로 기어내려 갔다. 한참 내려가서 뒤돌아보니 전망대 표지판이 저 멀리 보이는데... 여기를 어떻게 올라갈 생각을 했는지.


잘못 따라왔다가 같이 봉변당한 사람들


  그렇게 허벅지에 힘 빡 주면서 열심히 내려가는데, 올라온 길과 다르게 간 바람에 중간에 이런 비탈길을 마주했다. 올라온 대로만 갔다면 이렇게 막장인 길은 없었을 텐데 전부 다 똑같이 생긴 돌이라 길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그렇다고 반쯤 내려온 길을 다시 올라가는 건 더 험난해 보여서 그냥 썰매 타듯이 내려왔다. 도저히 서서 내려갈 수 없는 경사에 발 디딜 것도 없어서 내 바지를 혹사시키며 미끄러져 내려감. 우리 뒤를 따라오던 사람들이 저 위에서 길이 없다며  당황스러워했다. 사람 잘못 고른 탓이다...


힘든 하산을 마치고 내려와서 본 호수
카약을 빌려 호수를 떠디니는 사람들도 많다


  저 마의 구간만 넘기고 나니 다시 길다운 길이 나타나서, 금방 내려올 수 있었다. 내려오고 나니 오후 2시 반까지는 20분 정도 남았길래, 호수로 가보기로 했다. 전망대를 여유 있게 다녀왔거나 애초에 가지 않은 사람들은 호수에서 카약이나 보트를 빌려 탈 수 있다. 전망대 오르는 길 초반에 포기하고 내려간 사람들이 카약을 타고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아쉬웠지만 우리는 시간이 없어 구경하는 걸로 만족했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호수 물결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호수의 빛깔도 핵심


  전망대 위에 올라 내려다보는 호수가 파론 호수의 정석 이미지이지만, 개인적인 감상으로는 호수에 내려다보는 풍경도 충분히 아름답다. 정면에서 보는 설산은 그 크기가 더 거대해 보여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어떻게 이렇게 절묘한 호수가 탄생했을지 모를 일이다. 이래서 내가 자연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호수 주변 트래킹도 가능한 것 같다


  호수 근처에서 이 트래킹 표지판을 봤는데, 전망대를 오르는 대신 호수 주변을 따라 걷는 길도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봐도 돌로미티 브라이어스 호수보다도 커서 2시간 만에 한 바퀴 도는 건 불가능해 보이지만, 어느 정도까지 갔다 돌아오는 건 괜찮아 보였다.


고산 지대에 드문드문 보이는 집들
저 멀리에서부터 우리가 달려온 거다


  오후 2시 반이 다 되어 투어 차량으로 다들 돌아와서 산을 내려갔다. 한 시간쯤 지나 눈을 떠보니 아까 점심 메뉴를 고르고 지나갔던 식당에 도착해 있었다. 여전히 풍경이 멋있길래 식당에 들어가기 전 주변을 좀 둘러보았다. 평소에는 투어 상품과 연계하는 식당을 아니꼽게 생각했지만 이곳은 뷰가 좋아서 마음에 들었다.


고소했던 페루의 옥수수 튀김
페루 대표 음식 로모 살타도


  풍경을 찍다가 좋은 자리를 놓쳤지만, 나름 바깥 풍경이 잘 보이는 자리에 앉아 음식을 기다렸다. 이런 곳에서 먹는 음식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기 때문에 평균만 되어도 만족하는 편인데, 다행히 이곳 로모 살타도는 나쁘지 않았다. 페루는 특이하게도 토마토를 속을 발라내어 껍질만 구워 함께 올려주는 것 같던데, 처음에는 파프리카인 줄 알고 속았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감자튀김이 너무나 느끼했다는 것. 대신 식전에 나오는 저 옥수수 튀김은 고소하니 맛있었다. 이것도 처음에는 땅콩인 줄 알았는데 옥수수더라.


돌로미티에서 전수받은 점프샷 성공


  밥 배불리 먹고 신나서 점프샷 연습 좀 했다. 돌로미티에서 비법을 전수받고 틈틈이 연습해왔는데도 여전히 마스터하기 힘든 점프샷... 어떤 소문으로는 69 호수에 멀쩡히 오른 프랑스인이 점프샷 세 번 찍고는 구급대에 실려갔다던데 나는 다행히 세 번 뛰고도 멀쩡했다. 69 호수보다 낮은 고도라 그런 듯.

  그리고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데, 저 멀리서 눈을 의심케 하는 장면이 보였다. 평지를 달리기도 힘들어 보이던 툭툭이 돌길을 뚫고 터덜터덜 열심히 올라오고 있었다. 왜 하필 툭툭 기사를 고용해서 파론 호수까지 올라오려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제 시간 안에 호수에 도착했기를 바란다.


엄청나게 비싼 고산병 약 AltiVital


  이후 한참을 달려 오후 7시 반쯤에 와라즈에 도착했다. 투어 처음 설명해줄 때 오후 5시쯤 돌아오는 예정이라 했으면서 2시간을 거뜬히 넘겨버리는... 게다가 임의의 한 곳에서 전부 내려야 하기 때문에 숙소까지는 알아서 걸어가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오래 앉아있던 탓에 엉덩이가 너무 아파서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좀 걷고 싶어서 오히려 좋았다.

  그리고 오늘 파론 호수 투어를 해보고 나서 내일 69 호수를 갈까 말까 한참 고민하다가, 결국 69 호수 대신 파스토루리 빙하 투어를 가기로 했다. 파론 호수 전망대 오르는 것만으로도 힘이 드는데 7시간 트래킹을 하는 69 호수를 즐길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게 와라즈에서의 일정을 하루 앞당겨 리마에 일찍 가는 것으로 바꿨다.

  그리고 파스토루리 빙하는 파론이나 69 호수보다도 높은 해발 5,250m에 있기 때문에 고산병에 더욱 주의를 해야 한다고 해서, 숙소 돌아가는 길에 약국에 들러 고산병 약을 샀다. 약국 시스템이 특이하던데 약사에게 가서 처방전을 받고 약을 받는 곳으로 이동해 직접 약을 받는 방식이었다. 우리는 고산병 약으로 유명한 소로치필을 달라고 했는데 없다고 해서 차선책인 알티바이탈(AltiVital)을 샀다(소로치필보다 더 잘 듣는다는 평도 있음). 그런데 나는 한 통 주는 줄 알았더니 2알밖에 안 주더라. 2알에 무려 44솔... 진짜 비싸다.


우연찮게 찾은 와라즈 한식 마트


  약도 샀겠다, 가볍게 아이스크림 먹고 숙소로 돌아가려고 근처에 괜찮은 디저트 카페를 찾아갔다. 그런데 디저트 카페가 있어야 할 곳에 웬 상가가 있더라. 상가 안에 있나 싶어 들어가 봤는데 친구가 갑자기 지하 마트를 살펴보더니 저기에 순하리랑 라면이 있다고 막 외쳤다.

  들뜬 마음에 서둘러서 내려가 보니 정말 라면이 있었다. 라면뿐만 아니라, 오뚜기 떡볶이 키트부터 고추장, 캔 김치까지 한국 음식이란 음식은 전부 다 있었다(심지어 한국 과자도 엄청 다양함). 전날 페루 오픈 카톡방에 와라즈에 혹시 한국 라면 파는 곳 있냐고 물어도 아무런 답을 얻지 못해 낙담했는데 이렇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만나다니! 친구는 떡볶이 키트와 김치 캔 2개, 안성탕면 5개입, 고추장을 한아름 들고 무척 행복해했다. 도합 103솔 정도로 페루 물가로 따지면 거금을 쓴 셈이지만, 그만큼의 수확이었다. 안성탕면 5개입은 36솔, 김치 캔은 13솔 정도 하더라.


Golden Plaza

Golden Plaza · Centenario 290, Huaraz 02002 페루

★★★★☆ · 텐트 대여 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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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개시한 오뚜기 떡볶이
떡볶이와 안성탕면, 그리고 김치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떡볶이 하나랑 안성탕면 2개, 그리고 김치 캔 하나로 푸짐한 저녁을 먹었다. 떡볶이는 조금 달았지만 매콤하니 맛있었고 안성탕면은... 말해 뭐해다. 배 터지게 싹싹 긁어먹으니 오늘 고생한 게 싹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후식으로는 엄청 단 애플망고


  후식으로는 숙소 앞 가게에서 산 애플망고 두 개를 먹었다. 와라즈의 유니버설 호스텔을 추천한 어떤 블로그에서, 숙소 앞에서 산 애플망고가 인생 망고였다고 한 것을 봐서 우리도 숙소 근처를 찾아다니다 숙소 맞은편 과일 가게에서 겨우 잘 익은 애플망고 두 개를 건졌다. 지금껏 먹었던 애플망고 중에 가장 맛있었다. 친구의 손질 솜씨도 한몫한 듯.

  저녁을 먹고 나서는 바뀐 일정으로 가는 경우 어디서 몇 시에 어떤 버스를 타야 하는지, 리마에서 쿠스코행 비행기는 몇 시가 좋은지 등등을 한참 알아보다 잠들었다. 페루는 땅덩어리가 넓어 이동 루트를 짜는 것만도 무척 힘들다.

  그나저나 오늘 한 파론 투어는 진짜 마음에 들었다(어떤 여행사든 투어 비용이나 구성은 비슷한 것 같음). 콜롬비아에서부터 갈라파고스까지 조그마한 투어는 많이 했지만, 그중 가슴이 뻥 뚫리는 경험은 딱히 없었어서 여행이 살짝 루즈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파론 호수에서 풍경에 압도되는 경험을 하고 나니 다시 가슴이 뛰는 것 같았다. 페루의 첫인상, 마음에 쏙 든다ㅎㅎ


3. 비용

  • 숙소 - 49솔
  • 식사 - 점심 20솔, 애플망고 1솔, 한식 마트 52솔
  • 관광 및 투어 - 파론 호수 투어 50솔, 파론 호수 입장료 5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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