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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4일차 와라즈 국립공원의 얼음 파스토루리 빙하 투어/드디어 귀여운 알파카 인형과 만남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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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4일차 와라즈 국립공원의 얼음 파스토루리 빙하 투어/드디어 귀여운 알파카 인형과 만남

딩동빵 2022. 11. 8.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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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토루리 빙하와 호수에 반영된 푸른 하늘


1. 일정

  • 오전 7시-8시) 아침 식사
  • 오전 8시-10시) 국립공원 입구 도착
  • 오전 10시-오후 12시) 파스토루리 빙하 트래킹 입구 도착
  • 오후 12시-3시) 파스토루리 빙하 트래킹
  • 오후 3시-5시) 식당으로 이동 후 점심 식사
  • 오후 5시-6시) 와라즈 도착
  • 오후 6시 반-7시 반) 저녁 식사
  • 오후 8시 반-9시 반) 리마행 야간 버스표 구매
  • 오후 10시) 리마행 야간 버스 탑승


2. 사진과 감상

숙소에서 코카차 열심히 흡입


  오늘은 어제 파론 호수에서 돌아오는 길에 왓츠앱으로 부랴부랴 예약한 파스토루리 빙하 투어를 가는 날이다. 다행히 파론 호수 투어사에서 진행하기로 해서 투어비는 집결 후 내도 괜찮다고 해주었다. 그리고 블로그에 후기 열심히 쓰겠다고 어필하니 투어비 50솔에서 인당 5솔씩 깎아줌. 그래 봤자 국립공원 입장료가 30솔이긴 하다.

  어제의 파론 호수가 전망대 포함 해발고도 4,200m였다면, 파스토루리 빙하는 훨씬 더 높은 5,250m가 최대 높이다. 그래서 69 호수보다도 고산이기에 트래킹 시간이 길어 체력적으로 힘든 69 호수 투어와는 달리 시작부터 고산병으로 허덕이기 쉬운 투어다. 트래킹은 4,900m쯤 시작해서 5,250m까지 걸어 올라가야 하는데, 걷는 시간 자체는 30분에서 1시간 정도로 짧아도 절대적인 높이를 무시할 수는 없기에 아침을 먹으며 코카차를 잊지 않고 마셨다. 그리고 숙소를 나서 계단을 내려가는데, 어제의 여파로 허벅지가 장난 아니게 아프더라. 과연 파스토루리 빙하 투어도 잘 마칠 수 있을까?

아침의 파릇파릇한 와라즈 시내


  어제보다 높은 지대니까 더 추울 거라고 생각해 옷도 든든히 입었다. 그리고 어제 아침에 모였던 곳으로 가니 투어사 직원이 우리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해줬다. 우리보다 더 일찍 모여있던 사람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파론 호수 투어 차량에 타러 가고 우리는 또 한참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오늘도 날씨가 좋고 뒤늦게 탑승한 투어 차량도 어제보다 넓고 튼튼해 보였다.

내 손바닥보다 큰 복실복실 알파카 인형
볼이 빵실한 양 세 마리


  또다시 와라즈 시내를 돌며 남은 투어 인원을 태우고 한참을 달리던 투어 버스는 곧 어떤 식당 앞에서 멈췄다. 투어의 또 다른 묘미, 기념품 끼워 팔기 시간이 된 것이다. 식당 앞에는 온갖 기념품을 늘어놓고 파는 현지인들이 모여 있었다. 처음에는 별로 이쁜 게 없다며 실망했는데, 그 순간 적당한 크기의 알파카 인형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살 생각은 없었고 가격만 물어보려 했는데, 가격이 생각보다 착한 거다. 전날 본 알파카 인형과 비교해서도 훨씬 퀄리티 좋고 저렴했다. 바로 흥정 들어가서 25솔짜리를 22.5솔로 샀다. 마음에 쏙 드는 인형을 사고 나니 너무 몽실몽실 귀여워서 입이 절로 벌어지더라.

  그리고 친구가 바로 옆에서 또 다른 귀요미 키링을 발견했다. 양 인형이었는데 볼따구가 정말 탱글탱글 말랑말랑한 촉감이라 만지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재질이었다. 이것도 5솔이라길래 3개에 12솔로 해달라 흥정했다. 아주머니가 처음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15솔 지폐를 받고 거스름돈을 안 주려고 하길래 친구가 억울해하며 12솔에 주기로 했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제야 3솔을 줬다. 눈 뜨고 코 베이기 쉬운 남미...


당장에라도 나가서 걸어다니고 싶었던 풍경


  열심히 기념품 사냥을 하고 다시 도로를 열심히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데이터도 아예 안 터지는 마의 구간에 들어왔다. 파론 호수 투어가 투어 장소까지 왔다 갔다 하는 게 험난하다는 평이 많은데, 내 경험으로는 파스토루리 빙하 투어도 그만큼 차 타고 가는 길이 험난하다. 이런 국립공원 초입을 쭉 달리며 들어가는데, 포장도로가 아닌 자갈밭을 지나기 때문에 엉덩이가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그 와중에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너무 아름답다. 이래서 산타크루즈 트래킹을 하는구나 싶었다.


드넓은 평원에 가끔 보이던 동물들
드문드문 보이는 설산 끄트머리
한 사진에 정말 다양한 색이 스며들어 있다


  쉴 새 없이 달달거리며 달려가면서도 바깥을 보느라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땅덩어리가 넓기로 유명한 페루지만, 국립공원의 규모가 이렇게 클 줄은 몰랐다. 심지어 자갈길이 시작되고 나서 한 시간 정도를 달려야 입장료를 내는 구간에 다다른다. 입장료를 내고 나서도 파스토루리 빙하까지는 한 시간을 더 들어가야 하니까, 얼마큼 큰지 감도 안 오는 수준이다. 아쉬웠던 건 이렇게 넓은 곳을 차에 타고 빠르게 지나쳐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생각보다 내 발로 걸어 곳곳을 탐방하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다.


푸마팜파(Pumapampa) 구역에 도착
옷을 차려입은 아기 알파카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모자를 떨어뜨린 녀석


  국립공원에 들어선 후 맨 처음 멈추는 곳은 단장을 한 알파카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푸마팜파라는 곳이다. 그전에 넓은 호수도 하나 지나쳤는데 차에서 내려 둘러보지 않고 속도만 줄여 지나가서 아쉬웠다. 화려하게 치장해둔 다 큰 알파카 두 마리가 얌전히 앉아 있었고, 똑같이 옷을 입혀 꾸민 아기 알파카 두 마리가 두 명의 현지인에게 안겨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사람에게 잡혀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되는 게 안타까웠음... 너무 귀여웠지만 한편으로는 불쌍했다.


설산에 한층 더 가까워졌다
아까 오면서 산 알파카 인형과도 한 컷 찍어본다


  대신 아까 산 알파카 인형이랑 사진을 찍어보았다. 친구랑 각각 한 녀석을 안고 찍고 있으려니 투어 가이드가 와서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더라. 어제의 투어 가이드는 사진 찍어주지도 않고 사진 찍는 포인트도 딱히 안 알려주던데, 오늘은 그래도 계속 사진 찍어주려고 해서 고마웠다. 하지만 여전히 스페인어로만 설명하는 건 다르지 않다. 오죽하면 스페인어 못하는 외국인이 나한테 와서 자기는 여기 영어 투어라고 들었는데 알맞게 온 게 맞냐고 물었다. 나도 어제 영어 설명도 있다고 들었는데 하루 종일 스어만 들었다, 그래도 즐길 건 다 즐겼다고 해주니 허탈하게 웃더라.


길거리에 널려 있던 특이한 식물
수명이 무척 긴 파인애플의 일종이다


  사진을 다 찍고 나서 다시 버스에 탑승했다가,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거대하고 이상한 모양의 식물이 널린 언덕에 잠시 멈춰 내렸다. 하늘로 치솟은 기다란 잎과 그 아래 성게 모양의 뾰족한 구체는 서로 다른 식물종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의 식물이다. 수명이 무척 긴 선인장 혹은 파인애플의 일종으로, 파릇파릇한 녀석들 사이에 폭삭 내려앉은 노란 녀석들도 볼 수 있었다. 먹지는 못한다던데 그럼 다른 동물도 먹을 수 없는 걸까, 천적이 없다면 주어진 수명을 살다 자연스럽게 죽는 종류의 식물인 걸까 궁금해진다.


청량한 하늘 아래 우리가 타고 온 투어 버스
투명하게 반짝이는, 이색적인 웅덩이


  저 요상한 파인애플 무리와 반대편으로 가면 사람들이 몰려있던 작은 전망대가 보인다. 고산 지대라 오르막 계단을 천천히 걷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오르고 심장이 빨리 뛰는데, 전망대까지 내려가면 나중에 다시 올라와야 하니 내려갈까 말까 좀 고민했다. 그런데 먼저 내려간 사람이 탄성을 지르는 게 아닌가. 따라가서 봤는데 충분히 탄성이 나올 법한 풍경이었다. 멀리서 본 작은 웅덩이는 평범한 색의 웅덩이었지만,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웅덩이는 맑고 투명했으며 보석 결정이 빛을 받아 반사하는 것처럼 반짝거렸다. 물론 그 후에 다시 계단 올라오는 건 정말 힘들었다.


아직 빙하 코빼기도 안 보인다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다시 버스에 탔다. 우리가 가는 길은 여전히 평지가 대부분인 돌길이다. 이리저리 지그재그로 나아가기 때문에 저 앞에 보이는 설산은 가끔 사라지기도 하고 다시 나타나기도 한다. 이렇게 바닥에 붙어 가서야 언제쯤 빙하가 눈앞에 나타날지 궁금해진다. 분명 입구에서부터 한참 지나왔는데 빙하가 있을 법한 지형도 딱히 안 보이고.

  그러다가 까마득한 절벽 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왼쪽으로는 깎아지른 절벽만 보여, 창문 밖을 보고 있다가 심장이 벌렁거려 죽는 줄 알았다. 물론 운전기사의 짬바를 믿어야 하지만, 돌길이라 차가 좌우로 자주 흔들렸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몸이 반응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후반부에는 결국 눈을 감기로 했다. 그렇게 마지막 구간에서 계속되는 오르막을 오른 결과, 저 멀리 어둑한 빙하가 보이기 시작했다.


빙하 트래킹 시작점에서 뒤를 돌아보면 보이는 풍경
저 빙하까지 열심히 걸어 올라가야 한다


  장난감처럼 생긴 파스토루리 글자를 지나면 버스가 멈추고 가이드가 이제부터 빙하가 보이는 곳까지 걸어 올라가면 된다고 안내한다. 이때 1솔을 내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데, 트래킹 도중에는 화장실이 없으니 미리 가두는 게 좋다. 어쨌든 4,800m 고도에서 내리려니 처음엔 머리가 살짝 띵한 느낌이었다. 화장실 간 친구를 기다리며 최대한 움직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으니 고산 지대의 날카로운 찬바람이 온몸을 찔러대더라.


사람을 이송하기 위해 대기중인 말
임무를 마치고 다시 입구로 돌아내려가고 있다


  정말로 트래킹이 시작되는 입구에 도착해서는 마음가짐을 다시 바로 했다. 아주 천천히 걷고 숨은 크게 들이마시며 느릿느릿 경사진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고산지대라 숨이 금방 차는 건 어쩔 수 없더라. 우리보다 앞서 가던 사람은 도저히 안 되겠던지 중간에 말을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말을 타면 편하겠지만, 우리는 걸어서도 충분히 빙하에 다다를 수 있을 것 같아 우직하게 걸었다. 시간이야 무척 오래 걸릴 테지만 아직 비니쿤카도 안 갔는데 말에 굴복하고 싶지 않았음ㅋㅋㅋ


생각보다 길이 길었다


  완만한 오르막길이 계속되는데, 우리와 같이 뒤에서 천천히 걷는 사람들이 여럿 있어 외롭지는 않았다. 중간중간 앉아서 쉴 의자도 있어 힘들면 잠깐 앉아 쉬었다. 쉬고 있으면 익숙한 사람들이 우리 옆에 와서 같이 앉거나 뒤에서 헉헉대며 올라왔다ㅋㅋㅋ 우리는 이 무리를 지진아 그룹이라고 불렀다... 올라가면서 아까 국립공원 입구에서 비싸게 주고 산 초콜릿 하나를 까먹었다.


거의 다다르고 나서 돌아본 트래킹 길


  다행히 다른 고산병 증세는 따로 없었다.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게 숨이 찰뿐, 두통이나 호흡 곤란 등의 문제는 안 나타났음. 그리고 죽을 만큼 힘들지도 않아서,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올라갈 여유가 있어 좋았다. 사방이 온통 멋진 산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빙하 외에도 볼 게 참 많았다. 어제의 파론 호수는 호수 자체가 참 아름다웠다면 오늘의 파스토루리 빙하는 그곳에 닿는 길이 더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겠다.

  오르막 전에 살짝 멈춰 숨을 돌리고 있자니 벌써 빙하를 보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지나가며 힘을 내라고, 고지가 눈앞이라며 응원을 한다. 그렇게 힘든 건 아니라 응원까지 필요한 건 아니었는데 생각해보면 참 친절한 사람들이다. 이런 식의, 한계에 도전하는 여행지에서는 다들 전우애가 돈독해지는 것 같아 즐겁다.


파스토루리 빙하와 빙하 호수
날이 좋아 호수에 하늘이 반짝 비친다


  걷기 시작한 지 1시간쯤 되었을까, 높은 오르막을 오르고 나자 드디어 눈앞에 한결 가까워진 빙하가 펼쳐졌다. 하늘이 맑아서 빙하가 녹아 형성된 바로 앞의 호수에 구름과 푸른 하늘이 그대로 비추더라. 빙하 자체는 깨끗하지 않고 약간 꼬질꼬질해서 그렇게 멋있지는 않았지만, 사진이 무척 잘 받는다(마치 미주리나 호수처럼). 빙하가 하나의 산자락을 다 뒤덮고 있다면 더 장엄해 보였을 것 같은데 칙칙한 산 일부분만을 뒤덮고 있어 그랬을지도. 개인적으로는 빙하 반대편에 넓게 펼쳐진 호수와 산군이 더 멋있었다.


여기까지 잘 걸어왔다면 고비가 눈앞이다
와라즈의 비니쿤카 발견
5,250미터까지 10분도 채 안 남은 곳


  빙하가 눈에 들어왔다고 트래킹이 끝난 건 아니다. 조금 더 위쪽에서 빙하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 루트도 있고, 빙하 동굴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완만한 평지 루트도 있다. 어떤 후기에서는 전망대에 굳이 올라가도 딱히 다른 뷰가 나타나진 않는다고 하기도 했고, 슬슬 돌아가야 할 시간인 오후 2시가 다 되어가서 시간이 없기도 해서 우리는 그냥 빙하 동굴 루트로 갔다. 가는 길에 비니쿤카 비슷한 산도 봐서 신나서 찍음.


빙하를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열심히 걷는다
와라즈 바나나도 꿀맛이다


  빙하 가까이 가는 것도 꽤 멀다. 이 오르막이 마지막이겠지, 하고 열심히 올라갔다가 길이 한참 남은 걸 보고 놀랐다. 다행히 남은 길은 완만한 평지다. 평지로 넘어가기 전 친구와 챙겨 온 바나나를 나눠 먹었다. 고산병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후기도 많았는데, 난 배가 고파서 뭘 먹지 않고는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1시간의 트래킹 끝에 주변 풍경을 둘러보며 먹는 바나나는 꿀맛이다.


빙하 바로 오른쪽에 위치한 넓은 호수
빙하 뒤쪽으로 이어진 길과 거대한 바위 산
빙하 뒤쪽의 광활한 산군


  바나나도 다 먹고, 다시 힘을 내서 마지막 구간을 출발했다. 걸어갈수록 눈앞의 빙하보다 빙하를 둘러싼 넓은 풍경이 더 눈에 들어온다. 오른편을 보면 빙하가 녹아 생긴 넓은 호수가 맑은 빛을 자랑하고, 뒤를 돌아보면 우리가 지나온 구불구불한 길에 맞닿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대한 산군이 보인다.

붉은 색과 푸른 색이 대비되어 더욱 묘한 그림이다
어떤 원리로 핏빛이 되었는지 무척 궁금하다


  빙하에 거의 다다르면 이런 호수도 볼 수 있다. 진한 핏빛의 호수인데, 빙하의 파란 호수와 대비되어 더욱 비현실적인 느낌을 자아내더라. 어떻게 저런 색이 나올 수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파스토루리 빙하의 입에 도착했다
동굴 입구의 빙하가 녹아 떨어지며 반짝거린다


  그리고 드디어 트래킹 끝에 도착! 예전 후기들을 보면 빙하를 직접 만질 수도 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줄이 쳐져 있어 깊이는 들어갈 수 없었다. 친구가 빙하 동굴을 한참 보더니 호수 표면이 반짝이는 걸 가리키며 빙하가 녹아 떨어지는 거겠지? 하고 물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정말 동굴 입구 일부만 반짝이고 있다.


짭비니쿤카에 무척이나 집착하는 편
내려가는 길도 길지만 가볍게


  빙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으니 가이드가 또 다가와서 사진을 몇 장 찍어줬다. 그러고는 시간이 다 되었으니 내려가야 한다고. 다행히 볼 만큼 봤기 때문에 미련이 남는 건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고산병으로 고생하는 몇몇 사람들이 죽을 만큼 힘들어하는 것도 보았는데, 나는 머리가 살짝 아플락 말락 하는 정도일 뿐이었다. 그마저도 빙하 사진 잘 찍겠다고 여기저기 올라가서 그런 듯하다.

  투어 버스로 돌아가 자리에 앉으니 우리 옆자리 외국인이 잘 올라갔다 왔냐고 물었다. 자기는 고산병 때문에 중간에 내려와야 했다고, 밥을 맛있게 먹으며 아쉬워하더라. 그걸 보니 갑자기 배가 무척 고파졌다. 우리는 시간 맞춰 내려왔는데 도중에 늦은 사람도 꽤 있어 30분 정도 차에서 기다려야 했다. 배가 고픈 채로 앉아있는 건 참 힘든 일이다.


화장실 가려고 했는데 발견한 강아지들
이 오드아이 친구 너무 귀여웠다


  돌아가는 길에 아까 오다가 멈췄던 식당에서 내려 한 시간 정도 점심 먹을 시간을 준다고 한다. 지금 시간은 오후 4시, 점심 먹을 시간은 1시간. 점심 먹고 와라즈로 바로 출발해도 6시는 넘어 도착이다. 오늘 투어도 오후 5시면 끝난다고 했는데, 어김없이 늦는... 그리고 투어와 연계된 식당은 비싼데 맛이 없어서, 우리는 여기서 안 먹고 대신 궁금했던 와라즈의 유명 커리 식당을 가기로 했다. 한 시간 동안 식당 강아지들이랑 놀고 블로그도 쓰고 하며 버텼다.

  그나저나 69 호수 대신 파스토루리 빙하 투어를 선택한 건 잘한 것 같다. 69 호수 트래킹을 도전해보지도 않아 살짝 아쉽지만, 여행은 즐길 수 있어야 하니까. 파론 호수로 워밍업을 하고 파스토루리 빙하로 본격적인 고산 지대 트래킹이 어떤 건지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둘 다 다른 느낌의 풍경을 마주할 수 있어서도 좋았고.


하와이안 피자와 사랑에 빠진 것 같다


오후 5시에 출발해 딱 6시쯤에 와라즈에 도착한 버스는 어제보다도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람들을 전부 떨궜다. 커리 식당과는 15분 정도 거리라 엄청 걸어가야 했다. 그런데 막상 찾아간 커리집은 구글맵에 나와 있는 것과 다르게 문을 닫은 상태였다. 너무 아쉬웠지만 오늘 밤에 리마행 야간 버스를 타기 전 씻고 짐을 정리해야 해서 시간이 없었다. 대충 근처에 있는 평 좋은 이탈리아 가게를 찾아갔다.

분위기가 무척 고급스러운 만큼 가격은 정말 비쌌지만(피자 한판에 4-50솔), 하와이안 피자는 진짜 맛있었다. 다른 피자가 안 땡겨 그냥 가장 인기가 많은 하와이안을 고른 건데, 파인애플과 복숭아, 그리고 치즈가 잘 어우러져 한 입 먹는 순간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는 하와이안 피자라고 장담할 수 있음. 이 집에서 하와이안 먹고 하와이안이 더 좋아졌다.


Mi Comedia - Pizzeria

Mi Comedia - Pizzeria · Centenario 351, Huaraz 02002 페루

★★★★☆ · 이탈리아 음식점

www.google.com


마감 직전에 산 와라즈 - 리마행 버스 티켓
버스 터미널에서 엄청난 귀여움을 자랑하던 녀석


  밥도 배불리 먹고, 숙소로 돌아와서 남은 시간 동안 씻고 열심히 짐 정리를 했다. 그러고 짐을 전부 챙겨 로비로 내려와 숙박비를 계산하는데, 친절하게도 늦은 체크아웃과 샤워에 대한 요금을 빼고 계산해주었다. 그래서 거의 3박을 쓴 셈인데 2박 요금만 냈다. 유니버설 호스텔 사랑해요.

  그리고 나서 무작정 레드버스에 아직 티켓 구매가 열려 있는 Julia Caesar 버스 회사 터미널로 향했는데, 내가 장소를 잘못 찾아 길을 잃었다. 그 와중에 다시 레드버스 어플을 확인해보니 티켓이 전부 나가도 남은 버스 선택지가 다른 회사다. 그마저도 남은 티켓이 얼마 없던 상황. 그런데 다행히도, 우리가 길을 잃은 주변에 큰 버스가 무척 많았다. 울며 겨자 먹기로 큰 2층 버스 한 대가 출발하는 곳으로 향했더니 Zbuss라는 회사가 나왔고, 오후 9시가 넘은 상황에서 무사히 오후 10시 출발 리마행 버스 티켓을 살 수 있었다. 가격은 인당 50솔.

  한숨 돌리며 터미널 의자에 앉아 쉬는데 터미널 아기 고양이가 갑자기 친구 힙색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는다. 친구는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데 녀석을 한참 참아주었다. 나한테도 올라와달라고 사정사정을 했는데 도도한 녀석은 멀리 도망가버렸다. 나도 턱 긁어줄 수 있는데... 나도 엉덩이 두드려줄 수 있는데...

  오후 10시가 되어 버스에 짐을 맡기고 2층 좌석으로 올라갔다. 나와 친구는 맨 앞자리(3, 4번)였는데 어이없게도 어떤 아저씨들이 앉아 있는 거다. 단체로 와서 자기 표 자리도 모르고 앉아 있었단다. 우리가 그 자리라고 하니 비켜줘서 다행이었지만, 그 사람들이 나가느라 계단에서 기다리는 동안 나는 뒤의 아저씨들한테 욕을 얻어먹었다. 그래도 급하게 산 것치고 좌석은 나쁘지 않았다. 맨 앞자리는 앞이 널널해서 좋기도 하고. 한숨 자고 싶었으나 현지인이 많은 버스라 내 소중한 소지품 생각에 눈이 말똥말똥하다. 9시간 동안 안 자고 버틸 수 있을까.


Zbuss Huaraz

Zbuss Huaraz · Jr. Simón Bolívar 473, Huaraz 02001 페루

★★★★☆ · 상점

www.google.com


3. 비용

  • 숙소 - 49솔
  • 식사 - 초콜릿 3.5솔
  • 관광 및 교통 - 파스토루리 빙하 투어 45솔, 국립공원 입장료 30솔, 알파카 인형 22.5솔, 양 키링 4솔, 와라즈 - 리마행 야간버스 50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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