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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2일차 엘 칼라파테 모레노 빙하 미니 트래킹/전망대도 구경하고 빙하 캐서 만든 위스키 맛보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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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2일차 엘 칼라파테 모레노 빙하 미니 트래킹/전망대도 구경하고 빙하 캐서 만든 위스키 맛보기

딩동빵 2022. 12. 5.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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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레노 빙하 위에 앉아서


1. 일정

  • 오전 7시-8시) 아침 식사
  • 오전 8시-10시 반) 국립공원 내 모레노 빙하 전망대까지 이동
  • 오전 10시 반-오후 12시 반) 모레노 빙하 전망대 자유시간
  • 오후 12시 반-1시 반) 배 타고 빙하 트래킹 장소로 이동
  • 오후 1시 반-4시 반) 장비 착용 및 안전 수칙 설명, 미니 트래킹 후 숲 속 트래킹 길 따라 복귀
  • 오후 4시 반-6시 반) 엘칼라파테 시내로 이동
  • 오후 6시 반-7시) 식당에서 암환전
  • 오후 7시 반-9시) 저녁 식사


2. 사진과 감상


  루즈한 여행기 속 새로운 투어를 가는 날이 왔다. 몇 주 전부터 벼르고 있던 모레노 빙하 미니 트래킹! 엘칼라파테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유명한 투어인 빙하 트래킹은 빅과 미니가 있다. 둘 다 빙하 위를 걸어 다니는 건 똑같지만 빙하 위에서 보내는 시간과 콘텐츠의 질이 다른데, 빅 아이스 트래킹은 인기가 많아서 일찍 예약하지 않으면 할 수조차 없다. 물론 가격도 미니 트래킹의 두 배로, 한화 50만 원 정도 하니 쉽게 예약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비교적 저렴하고 예약이 쉬운 미니 아이스 트래킹으로 선택했다. 비교적 저렴하다지만... 아르헨티나 페소로는 49,000페소고 국립공원 입장료 4,000페소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한마디로 돈 쏟아부은 투어란 것.

간단한 조식도 준다


  투어에 가기 전에 호스텔에서 주는 조식으로 배를 채웠다. 남미 조식은 이제 너무 익숙해서 별 감흥도 없다. 이런 조식은 하루 이틀 먹다 보면 질려서 공짜로 줘도 먹기 싫어지는 경우가 태반이다. 여기는 자율 배식도 아니고 인당 정해진 만큼의 빵만 직원이 나눠주더라. 저 바삭한 식빵은 먹을 만한데 크루아상의 형태를 띤 요상한 빵은 손이 잘 안 간다.


후지 민박에서 받아온 나의 점심


  조식도 먹고, 후지 민박에 어제 주문해 둔 점심을 픽업하러 갔다. 모레노 빙하 투어는 점심을 주지 않아서 알아서 챙겨가야 하기 때문. 어제와 똑같이 우리를 반겨주는 거대 멍멍이 두 마리가 있어서 반가웠다. 민박으로 들어가니 조식을 기다리는 투숙객이 식탁에 둘러앉아 있던데, 냄새를 맡아보니 생선 요리인 듯했다. 순간 우리 호스텔의 조식과 비교가 되어 배가 아팠으나... 우리 몫으로 포장해 둔 김밥과 주먹밥을 보고 질투심이 사르르 녹았다. 라파즈에서 산 김밥과는 비교가 안 되는 두께의 김밥! 다른 게 아니라 이게 너무 그리웠다ㅠㅠ 친구의 주먹밥도 한 덩이일 줄 알았는데 세 덩이나 되어서 감동함.


비현실적인 색감의 아르헨티나 호
뒷배경의 푸른 산과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


  점심을 가지고 돌아가니 픽업 시간에 맞춰 미니 버스가 숙소 앞에 도착했다. 숙소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내 이름을 부르길래 그거 나 맞아! 하면서 부랴부랴 짐을 싸들고 달려 나갔다. 주변을 돌며 사람을 가득 채운 미니버스는 한 지점에서 멈춰 우리를 큰 투어 버스로 옮겼다. 각기 다른 미니버스를 타고 모인 사람들이 하나의 투어 버스로 모이는 질서정연한 모습에 투어사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는 중.

  그리고 빙하 투어를 하러 국립공원으로 이동하는 동안의 풍경이 무척 예뻐서 감탄했다. 차창 옆으로 이어지는 저 호수는 빙하가 녹은 물로 인해 형성된 아르헨티나 호라던데, 너비는 20km에 길이는 100km나 되는 엄청 거대한 호수라고. 빙하가 녹으며 나온 작은 결정들이 호수 바닥으로 가라앉지 않고 표면을 떠다니는데, 햇빛을 받으면 호수가 반짝이는 것처럼 보인다고 한다. 대신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좀 더 회색의 호수가 나타나는데, 이는 빙하가 녹으며 나오는 결정의 농도가 더 짙어져서 그런 거라고.


국립공원 도로 한가운데에서 식사 중인 콘도르
콘도르 옆에는 카라카라들이 모여 콩고물을 주워먹고 있다


  호수를 지나면 푸릇푸릇한 초원이 쫙 나타난다. 넓은 초원을 달리는 도중, 기사가 버스를 천천히 멈추더니 가이드를 막 부른다. 뭔가 싶어서 기웃거렸더니 가이드가 유창한 영어로 지금 버스 앞에서 콘도르가 식사 중이라고 알려준다. 버스 앞으로 가까이 와서 구경하고 싶은 사람들은 나와도 된다고 하자마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나갔다. 아레키파의 콜카캐년 투어를 가서도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는 콘도르를 이렇게 보게 되다니. 콘도르 덩치가 너무 커서 그 옆에 알짱거리는 카라카라(이 친구도 나름 한 덩치 함)가 병아리처럼 보였다.


4,000페소나 하는 국립공원 입장 티켓


   빙하 전망대에 도착하기 전, 국립공원 티켓을 사는 곳에 잠시 멈춘다. 온라인 결제도 되고 카드 결제도 되던데, 아르헨티나는 무조건 현금이 유리하므로 우리는 준비해 둔 8,000페소를 꺼냈다. 국립공원 입장료는 투어비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게 좀 어이없다. 투어가 그렇게 비싼데! 국립공원 자체도 다양한 야생동물이며 지형지물 등 볼 게 많아 보이던데, 나중에 다시 오면 사파리 투어를 신청해서 과나코 같은 동물들을 가까이서 보고 싶다.


빙하 전망대 시작점에 도착
후지 민박 김밥으로 점심 배불리 먹기


  국립공원 티켓을 사고 나서 10분쯤 더 달리니 빙하 전망대에 도착했다.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반쯤이고, 가이드는 우리에게 2시간의 자유 시간을 주었다. 오후 12시 반까지 집결 장소로 돌아와 빙하 트래킹을 하러 떠난다고. 그리고 전망대 표지판 앞에서 각 길에 대해 간단한 설명도 덧붙였다. 노란색 길은 가장 일반적인 중심부의 길이고, 파란색 길은 아르헨티나 호와 빙하 뷰를 볼 수 있으며, 빨간색 길은 빙하와 가장 가까워질 수 있는 길이란다. 하지만 돌아오는 시간도 고려해야 하니 빨간색과 파란색 길은 한 두 개 정도의 전망대까지만 가는 것을 추천한다고.

  사람들은 가이드의 설명을 듣자마자 재빠르게 노란색 길을 따라가던데, 벌써부터 배가 고픈 우리는 전망대를 돌아다니기 전에 밥부터 먹기로 했다. 보다시피 후지 민박 김밥 내용물은 정말 푸짐하다. 밥이 살짝 신맛이 첨가되어 있어 일본식 느낌이 나지만, 안에 들어간 반찬들이 풍부해서 오랜만에 만족스러운 점심을 먹었다. 하지만 친구의 주먹밥은 그렇게 만족스럽진 않았던 듯. 후리카케 맛과 참치 맛, 그리고 연어 맛이 있었는데 전부 밍밍하거나 짜거나 했다고. 주먹밥이 2,400페소고 김밥이 2,600페소(투숙객이 아닌 경우 이 가격)니 200페소 더 내고 김밥을 먹는 걸 추천한다.

하얗고 푸른 모레노 빙하를 본 순간
꼭 얼음 장벽처럼 굳건히 서 있다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


  점심으로 배를 채우고 나서 강한 바람을 뚫고 노란색 길로 쭉 나아갔다. 노란색 길의 중앙에 도달하니 엄청나게 거대한 모레노 빙하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 규모가 매우 크다는 건 사진으로도 많이 봐서 알고 있었는데, 직접 보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와라즈에서 본 파스토루리 빙하와 비교할 수밖에 없는 웅장함이었다. 그 색깔은 또 어떻고.


모레노 빙하 바로 옆으로 보이는 아르헨티나 호
아르헨티나 호의 색을 닮은 빙하
뾰족한 빙하 뒤에 웅장한 설산


  나는 최대한 다양한 각도에서 모레노 빙하를 감상하고 싶어서, 파란 길로도 쭉 가보았다. 파란색 길로 가니 아르헨티나 호와 가까운 모레노 빙하의 우측 면이 잘 보인다. 빙하가 녹아 형성된 아르헨티나 호의 비현실적인 색감도 한눈에 잘 들어오더라. 하지만 아쉽게도 길이 도중에 막혀 있고 더 나아갈 수는 없어 중앙 길로 돌아와야 했다.

빨간색 길 전망대에서 본 모레노 빙하
조금 더 뭉툭한 빙하 단면이 보인다


  시간도 충분히 남으니 빨간색 길로도 가보았다. 빨간 길은 빙하를 따라 쭉 내려가는 길인데, 끝까지 가면 빙하를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전망대 두어 개까지만 가보았는데, 우측 면과는 다른 느낌이 신기하더라. 같은 빙하인데 너무나 거대해 어느 각도에서 보는지에 따라 느낌이 다르다.


빙하와 호수 색을 따 만들었다는 아르헨티나 국기
끝도 없이 펼쳐진 모레노 빙하


  다시 돌아와서 노란색 길 중앙에 놓인 바람막이 구조물로 들어가 좀 쉬었다. 빙하 전망대는 다 좋은데 바람이 너무 강해서 돌아다니기 어렵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은 마음인지 다들 창문 뒤에 숨어 열심히 빙하를 감상하더라. 나는 빙하가 어디서부터 내려왔는지를 보고 싶었는데, 구름에 가려 저 끝의 설산이 안 보여서 아쉬웠다. 그럼에도 끝도 없이 펼쳐진 빙하가 주는 위압감은 대단하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 저 꼭대기에 있던 얼음이 이곳까지 내려왔을까.


빙하 트래킹을 하러 타고 갈 페리


  전망대에서의 두 시간은 금방 끝났다. 모레노 빙하를 진심으로 즐기고 싶다면 하루는 투어로, 하루는 전망대만 구경하러 오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이후 큰 투어 버스를 다시 타고 페리 선착장으로 향했다. 이제 빙하 트래킹을 하러 페리를 타고 모레노 빙하의 서쪽면으로 가까이 다가갈 차례다.


저 멀리서부터 우리를 반기는 모레노 빙하
전망대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쨍하고 맑은 색깔


  우리가 탈 페리가 2층이 있길래, 모레노 빙하가 가까워지는 순간을 두 눈으로 보고 싶었던 나는 2층으로 올라가도 되냐고 물었다. 하지만 바람이 너무 센 바람에 2층은 닫아 두었다고ㅠㅠ 대신 배 뒷면에서 안전하게 구경하는 건 말리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냅다 뒤로 나가 바람을 얼굴로 견디면서 모레노 빙하에 가까워지는 순간을 담았다. 바람은 진짜 셌다... 심지어 차가운 빙하 물도 사방에서 튀어 힘들었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도 빙하를 보고 싶은지 고민하다가 뒤편으로 나오더라. 결론은, 추위를 견디면서까지 눈에 담을 만한 풍경이었다.


어느덧 갈색 땅이 끝나고 빙하가 널리 펼쳐진다
설산과 빙하의 아름다운 조화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이 떠다니기도 한다


  가까워질수록 전망대에서 멀리 보기만 해서는 눈에 담을 수 없는 다양한 모양의 빙하가 나타났다. 거대한 빙하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빙하 조각들이 떠다니기도 하고, 구름과 햇빛의 변화로 매 순간 빙하 색이 일렁이며 바뀌기도 했다. 뒤의 굳건하고 어두운 설산과 대비되어 빙하의 발랄한 푸른빛이 더욱 눈에 띄더라.


때묻지 않은 색의 빙하들
저 빙하 조각 위에 타 보고 싶다
빙하에 가까워지니 뒤의 설산도 안 보인다


  전망대에서도 감탄이 나왔는데, 이런 빙하 뷰를 보는 순간 전망대에서의 감동은 싸그리 잊히더라. 빙하의 거대한 모습을 한눈에 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또 다른 느낌이었다. 빙하를 구경하기만 하는 것과 빙하를 가까이서 만질 수 있다는 차이? 그리고 좀 더 때 묻지 않고 청량한 색의 빙하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가까워질수록 그 규모가 가늠이 안 된다
끝도 없이 펼쳐진 빙하 장벽
우리가 곧 트래킹을 시작할 지점


  배가 정박을 준비할 때까지 넋을 놓고 빙하 사진만 수백 장 찍어댄 것 같다. 어느 순간 보니 우리가 조금 뒤에 트래킹을 시작할 지점도 보인다. 빙하 트래킹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나, 뾰족하고 높은 빙하 위로 로프를 걸고 빙벽 등반을 해야 하려나 싶었던 생각은 허상이었다. 다행히 빙하와 땅이 맞닿은 완만한 부분이 있었던 것!


빙하 트래킹 하는 사람들을 위한 산장


  배에서 내리고 나서부터는 가이드가 추가로 붙어 스페인어 팀과 영어 팀, 총 두 팀이 되었다. 내 모국어는 영어가 아니지만 스페인어보다는 나을 거라 우리는 자연스레 영어 팀으로 붙었다. 본격적으로 트래킹을 시작하기 전, 근처 산장에 들러 화장실 가거나 가지고 온 물품을 두고 갈 시간을 준다. 산장이 무척 깔끔하고 커서 잠시 쉬어가기에도 좋다. 그리고 개인 장갑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목장갑 같은 장비를 빌려주기도 하니 꼭 챙기기.


해변가를 걸을수록 가까워지는 빙하
빙하 녹은 물은 차갑다
푸른 빙하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해변


  산장에서 볼일을 다 마치면 바로 옆에 난 숲길을 따라 빙하를 가까이 볼 수 있는 해변가로 간다. 사실 빙하는 오고 가는 배 위에서 보는 게 가장 아름다웠지만, 트래킹 시작 전 기대감을 높이기에는 좋았다. 해변가를 걸으며 빙하가 녹은 물을 만져볼 수도 있다. 어떤 외국인은 물을 만져보더니 별로 안 차갑다고, 당장에라도 뛰어들 수 있겠다며 허세를 떨길래 가이드가 엄청 웃었다.


점점 트래킹 지점에 가까워지는 중
해변가까지 떠내려온 빙하 조각들
아르헨티나 국기와 빙하와 찰칵


  해변가를 걷다 보면 점점 갈색 땅보다 빙하가 더 많이 보인다. 그리고 트래킹 시작 지점으로 가기 전, 가이드가 간단히 빙하 지형에 대해 설명해준다. 설명은 버스 안에서 또 다른 가이드가 한 설명과 어느 정도 겹쳤는데, 몇 가지 새롭고 흥미로운 사실도 알게 되어서 나름 재미있었다.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 지역은 겨울을 제외하고 대부분 영상이라 빙하가 형성되는 게 신기하다는 점, 그리고 빙하는 축적층이랑 빙하층으로 나뉘어 10년 동안 축적되고 나면 중력에 의해 앞으로 전진하는 듯한 형태를 띤다는 점. 파타고니아에 뾰족뾰족한 지형의 산이 많은 것은 빙하에 의한 침식 때문이라는 점 등등.

절대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이 생긴 지형
완만한 빙하 옆에는 무시무시한 빙하도 있다
푸른빛 영롱한 구멍들도 신기하다


  설명을 마치고 나면 이제는 진짜 트래킹을 시작하러 이동한다! 여기서부터는 고개를 조금만 들어 올려다 보아도 제각기 다르게 생긴 빙하 지형들이 인사를 한다. 걸어가며 옆의 땅과 맞닿은 빙하를 만져볼 수도 있는데, 빙하 결정이 생각보다 굵고 까끌까끌해서 신기했다. 멀리서 보면 곱고 부드러울 것 같이 생겼는데, 전혀 아니다.

헬멧을 쓰고 일렬로 이동


  트래킹의 첫 번째 관문은 장비 착용이다. 나는 빙하 위에서 걸을 수 있도록 아이젠 정도만 줄 줄 알았더니, 아이젠에 앞서 머리를 보호하기 위한 헬멧을 착용하도록 한다. 빙하 결정이 생각보다 굵고 거친 걸 보니 헬맷까지 주는 이유가 납득이 되기도 하고. 친구는 처음에 흰색 헬맷을 받아 행복해했는데, 옆사람이 흰색을 원하는 바람에 무심한 가이드한테 흰색을 뺏기고 슬퍼했다. 나는 영문도 모르고 흰색 당첨!


바닥에 널브러진 크램폰들
본인 신발에 맞게 가이드가 크램폰을 조정한다


  헬맷 다음으로는 크램폰 착용이다. 헬맷을 쓰고 일렬로 이동한 사람들이 차례로 벤치에 앉아 가이드에게 신발을 맡기면, 가이드가 노련한 솜씨로 크램폰을 묶어준다. 그리고 나는 크램폰들을 보자마자 아차 싶었다. 살면서 빙하 근처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기에, 빙하 위를 걷게 해주는 장비라면 신발 대신 신는 특수 부츠 같은 게 아닐까 했는데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본인 신발 위에 매는 형식이었다면 다 떨어진 운동화가 아니라 트래킹화를 신고 왔지...

  크램폰을 처음 착용하다 보니 걷는 것도 영 어색해서 힘들었다. 가이드한테 팁을 물어보니 두 발을 넓게 떼어두고 걸어다니라 한다. 그 말대로 해보았는데 막 걸음마를 뗀 아기같이 걸어다니는 것  같아 살짝 현타가 왔다.


사람들이 모여 있던 얼음 동굴


  그렇게 크램폰에 익숙해지려 이리저리 움직여 보는데, 저 멀리 얼음 동굴 속으로 사람들이 막 들어갔다 나갔다 하는 게 보인다. 처음에는 저 동굴 속으로 들어가 트래킹을 시작하는 줄 알았다. 동굴 속에 빙하 바깥으로 나가는 계단 같은 게 있어 저기로 들어가면 꼭대기로 뾱 나올 수 있다고. 하지만 내 기대와는 다르게 준비를 마친 가이드는 우리를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우리가 올라갈 빙하 지형
크램폰을 착용하니 걷기는 편하다


  열심히 땅만 보며 걸어가는데 어느 순간 가이드가 멈추더니 빙하 위로 막 올라간다. 여기서부터 가이드는 두 명이 된다. 한 가이드는 우리에게 설명과 안내를 맡고, 다른 가이드는 우리 주변을 맴돌며 위험 요소를 판단한다고. 설명을 맡은 가이드는 빙하 트래킹에 앞서 트래킹 요령을 알려줬다. 올라가거나 내려갈 때 무조건 보폭을 좁게 해서 움직이고, 크램폰을 내리찍을 때 꼭 힘을 줘서 얼음을 잘 부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두 발이 꼬이지 않도록 널리 떨어뜨리고 다녀야 하는 것. 또 빙하 결정은 날카로우니 안전을 위해서라도 장갑을 꼭 껴야 하며, 한 손에 핸드폰을 들고 걸어 다니며 사진을 찍으면 위험하니 사진을 찍을 땐 꼭 멈춰서 찍고 다시 이동하기!

  이렇게 말로 설명을 끝내고 나서, 아무런 준비 운동 없이 바로 빙하로 올라오라고 하더라. 아직 크램폰에 적응도 못 했는데 이렇게 바로 빙하를 올라가라고? 나는 엄청 놀랐는데 앞의 외국인들은 군말 없이 길을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러면 나도 따라갈 수밖에... 처음에는 엄청 긴장해서 힘을 팍팍 주며 올라갔다.

군데군데 있던 빙하 물이 고인 부분
빙하 녹은 물이 흘러 떨어지는 깊은 구멍


  그래도 5분쯤 지났을까, 가이드가 전달한 유의 사항을 신경 쓰며 열심히 빙하 위 움직임에 적응하니 걸을 만 해졌다. 이때부터는 주변 풍경을 감상하며 그저 즐기기만 하면 그만이다! 가이드들은 흥미로운 지형을 발견하면 설명해주고 사진 찍을 시간도 주었다. 빙하가 녹은 물이 고여 있는 틈새는 질릴 만큼 보았고, 그중 빙하가 녹은 물이 흘러 떨어지는 깊고 푸른 구멍은 한 사람씩 잡아주며 그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게 했다. 가이드가 잡아주니 안심하고 가까이 다가가서 고개를 들이밀었는데, 까마득한 푸른색이 무섭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하더라.


거대하고 웅장한 빙하 지형
깊은 굴곡은 반투명한 푸른빛으로 채워져 있다
전문가들은 저런 곳도 올라갈 수 있나 싶고


  미니 트래킹은 실망했다는 평이 꽤 많다. 빅 아이스 트래킹에 비해서 빙하 위를 걷는 시간도 적고 볼 수 있는 지형도 단순하다고. 하지만 나는 빙하 위를 걷는 것 자체만으로도, 걸으며 다양한 생김새의 빙하를 보고 만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전망대에서 보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느낌. 빙하와 가깝게 맞닿아 걸으며 보는 풍경에서 다양한 상상력을 펼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물 색이 영롱한 빙하 호수


  내가 중간중간 요령껏 사진을 많이 찍을 수도 있지만, 가이드들이 사진을 찍도록 시간을 주는 스팟도 여러 군데 있다. 그중 하나가 이 빙하 호수였는데, 빙하에서 녹은 물이 떨어져 고이는 지점이라고 한다. 여기서 친구는 가이드가 찍어준 기상천외한 사진을 건졌고 나는 풍경 사진을 열심히 찍었다ㅋㅋㅋ 저 물빛은 너무 영롱해서 고개를 넣고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빙하 뒤 구름 모양도 특이하다
설산 그 자체인 것 같은 빙하 지형도 찾음
매끄러운 빙하 지형도 있었고


  이동하면서도 틈틈이 주변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장갑을 끼고 이동하다가 마음에 드는 풍경이 나타나면 멈춰 서서 장갑을 벗고 핸드폰 버튼을 눌러야 해서 좀 번거롭긴 했지만, 한 번에 25만 원짜리 투어인데 와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맨 앞에서 앞장서서 이동하던 우리는 어느 순간 일행의 꼬리가 되어 있었다ㅋㅋㅋ


상상력을 자극하는 빙하 다리


  가끔은 내 낙하 상상력을 자극하는 빙하 다리도 건넜다. 한 발짝만 건너면 되는 좁은 다리긴 하는데 그 옆을 내려다보면 까마득한 크레바스 틈새가 보여 좀 아찔하다. 저기로 떨어지면 어렸을 적 즐겨 읽던 빙하에서 살아남기 만화책의 내용을 적용할 틈도 없이 죽는 거 아닌가... 하지만 우리에겐 든든한 가이드가 있어 괜찮다.


빙하 아래 저 멀리 우리가 지나온 산들이 보인다
빙하 뒤편의 설산도 같이 보인다


  어느 정도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다가 한참을 걸어 올라가면 탁 트인 전경이 펼쳐진다. 완전히 빙하 정상은 아니지만 바람이 강하고 시원함. 이곳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빙하 뒤에 숨어 있던 설산과 저 멀리 있는 육지도 보인다. 가이드가 사진 찍을 시간도 주는데 전의 스팟에서 의도치 않게 어떤 커플과 단체 사진을 찍어버린 나는 개인 사진을 건지기 위해 빙하 위에도 앉는 등 온갖 노력을 다 했다. 사진을 찍고 일어나는데 엉덩이에 빙하 조각이 붙어 있던...


큰 규모의 크레바스 속 들여다보기
마지막으로 들쑥날쑥한 빙하를 눈에 담고


  사진을 다 찍고 돌아 내려가며 지금까지 봤던 크레바스 중 가장 큰 규모인 크레바스도 보았다. 여기는 떨어지면 진짜로 바닥 끝까지 갈 수도 있겠더라. 틈새 사이 푸른색이 이제까지의 푸른색과 차원이 달랐다. 그러고 나서 뭔가 빙하를 내려가는 낌새길래, 친구가 슬슬 빙하 위스키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저 멀리서 보이던 검은 상자 세 개


  모레노 빙하 투어하면 유명한 것이 바로 빙하를 즉석에서 캐서 만들어 주는 빙하 위스키다. 하지만 어떤 후기에서는 배를 빙하 가까이 몰고 가서 빙하를 캔 다음 위스키를 줬다고도 하고, 아까 페리에서 내릴 때 위스키 잔들이 쭉 늘어져 있던 걸 봤기도 해서 나는 페리로 돌아가면 나눠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가이드를 따라 내려가던 중, 저 멀리 검은 상자 세 개가 눈에 들어왔다. 아무리 봐도 의미 없이 둔 것 같지는 않고, 위스키와 관련된 것들을 넣어둔 것 같아서 슬슬 기대가 되기 시작했다. 같이 걸어가던 외국인들도 점점 눈치를 채더라.


열심히 빙하를 캐던 가이드
본오본과 위스키 잔이 세팅된 테이블
빙하 위스키 한 잔 짠


  그리고 빙고! 상자 쪽으로 가니 초콜릿과 위스키 잔이 세팅되어 있는 테이블이 있었다. 가이드 한 명이 바로 근처의 빙하로 후다닥 달려가서 곡괭이로 빙하 조각을 캐서 왔다. 그리고 위스키 잔에 빙하 조각을 나눠 담고 위스키를 조금씩 따라 사람들한테 나눠줌. 술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빙하 위스키라, 낭만있어서 몇 모금 마셨다. 술을 좋아하는 친구의 평에 따르면 맛없는 싸구려라고 하더라. 내게는 그저 맛이 없는 평범한 술일뿐. 대신 본오본 초콜릿을 세 개 주워 먹었다.


비현실적인 푸른 빛을 띠는 빙하 동굴
천장에서 빙하가 녹아 내리기도 한다


  술을 먹어서 알딸딸한 기운에 빙하를 내려오면 위험하지 않을까 했는데 다행히 사고 없이 무사히 내려왔다. 빙하 트래킹을 끝내니 거의 2시간쯤 지나 있었다. 내려와서는 크램폰을 벗고, 아까 트래킹 시작 전에 먼발치에서 구경한 빙하 동굴을 구경할 시간이 주어졌다. 빙하 동굴의 규모는 생각보다 작았는데, 내부의 신비로운 색은 상상 이상이었다. 카프리 섬의 푸른 동굴을 가지 못한 아쉬움이 싹 녹아내리는 느낌.


빙하와 산장을 잇는 숲속 트래킹 길


  동굴까지 보고 난 후에는 가이드가 페리를 불러올 테니 숲으로 이어지는 트래킹 길을 따라가서 산장에서 10분 정도 쉬고 있으라 한다. 트래킹 지점까지 올 때는 숲길을 조금 걷다 해변가로 나와 몰랐는데, 돌아갈 때 숲길로만 걸어가니 꽤 길더라. 그 와중에 우리를 포함한 맨 앞 여섯 명 발걸음이 무척 빨라서 나중에는 뒷사람들이 안 보였다. 산장에 도착해도 우리 빼고 아무도 없길래 조금 불안했는데, 조금 기다리니 다행히 사람들이 하나둘 걸어왔다.


풀숲과 빙하와 설산의 뷰
따뜻 달달한 커피 한 잔
산장 안에 비치된 52번째 방명록도 구경했다


  산장 바깥은 바람이 심하길래 내부로 들어와서 가이드가 돌아올 때까지 쉬었다. 산장 바깥에는 트래킹을 하고 온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무료 커피와 차가 비치되어 있어 좋더라. 빙하 트래킹이 그렇게 힘들진 않았지만 몸을 좀 녹이기 위해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셔주고... 산장 내부에 비치된 투어 방명록도 구경했다. 원래 방명록 같은 거 잘 안 쓰는데 빙하 투어는 특별한 느낌이라서 짤막한 글도 하나 썼다.

투어가 끝나면 친환경 뱃지도 준다


  산장에서 쉬고 있다 보니 가이드가 돌아와서 페리가 도착했다고 알려줬다. 페리로 돌아가는데 Hielo&Aventura 투어사 직원이 투어 인증 친환경 뱃지를 나눠준다. 친환경 뱃지라 해서 생분해성인 줄 알았더니 뱃지 사이에 씨앗을 숨겨두었다고(왜). 그래도 뱃지의 신발과 크램폰 그림이 너무 귀여워서 소중히 보관해두는 중.


페리를 타고 모레노 빙하를 떠나오며
빙하를 배경으로 한 아르헨티나 국기


  다행히 돌아올 때에는 페리가 이동하는 방향이 바람이 부는 방향과 같아서 2층에 올라갈 수 있었다. 2층에는 아르헨티나 국기가 있어서 핫한 사진 스팟이 되었다. 사람 없이 국기와 빙하만 찍으려고 엄청 노력함... 멀어지는 빙하를 보는데 복합적인 감정이 들더라. 내가 못 가본 저 너머를 탐험하고 싶다는 아쉬움과 빙하를 걸어봤다는 설렘이 공존하던 순간.


모리슨 식당에서 나머지 돈 환전하기


  페리에서 내리면 이제 진짜 빙하를 떠난다는 게 실감이 난다. 이후 우리가 타고 왔던 큰 투어 버스로 옮겨 타 엘칼라파테 센트로로 이동한다. 비싼 투어라 그런지 센트로에서 다시 미니 밴으로 갈아타고 각자 숙소까지 데려다주더라. 우리는 센트럴과 숙소 중간에 있는 모리슨 식당에서 어제 얘기해 둔 금액을 환전해야 해서 중간에 내렸다. 총 460달러를 암환율 270에 바꿨더니 바꾼 돈을 지갑에 넣을 수가 없음. 아르헨티나는 하루빨리 5,000페소권을 만들어라...


멕시칸 집 대신 간 피자집에서 시킨 반반 피자
후식으로 달달한 아이스크림 세 스쿱
피자집에서 발견한 나의 운수


  빙하 트래킹도 하고 환전도 했겠다, 저녁은 맛있는 것으로 푸짐하게 먹고 싶어서 어제 치킨이 맛있던 숙소 근처 멕시칸 집에 가기로 했다. 그런데 멕시칸 집은 화요일에 휴무라 닫혀 있었음ㅠㅠ 아쉽지만 그 옆의 피자집으로 갔다. 그리고 맛없지만 푸짐한 저녁을 먹게 되었음.

  양파 토핑과 마르게리따 맛으로 반반 피자를 시켰는데, 너무 질리는 맛이었다. 토핑 자체의 다양성도 적어 선택지도 별로 없었음. 게다가 매운 소스를 달라 했더니 생마늘을 간 소스를 얹어 주던데, 너무 끔찍해서 전부 걷어내고 먹어야 했다. 디저트로 먹은 500페소 아이스크림은 평범했음. 가게를 나가기 전에 운수 책이 있어 구경했는데, 대강 해석해보니 '사람들은 네가 불안해하는 걸 아무도 모르니 눈을 맞추는 걸 두려워 말라'라는 문장이더라. 마음에 드는 문장이 아니라 패스.


Viva La Pizza

Viva La Pizza · Enrique Amado 84 Local 5, 9405, El Calafate, Santa Cruz, 아르헨티나

★★★★★ · 피자 전문점

www.google.com


트래킹 시작 전 해변가에서

  빅 아이스 트래킹이든 미니 트래킹이든, 한 번 하는 투어치고는 너무 비싸 다들 고민하곤 한다. 실제로 투어를 하고는 실망하는 사람도 많고, 전망대에서만 모레노 빙하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언제 이렇게 큰 빙하 위를 걸어볼 수 있을까. 적어도 트래킹을 해보면 전망대에서 더 나아가는 선택을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모레노 빙하는 계속해서 녹아가고 있는 만큼, 충분한 시간과 여비가 있다면 꼭 걸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3. 비용

  • 숙박 - 2,600페소
  • 식사 - 점심 2,600페소, 저녁 2,250페소
  • 관광 및 투어 - 모레노 빙하 투어 49,000페소, 숙소 수건 대여 100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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