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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7일차 리마에서 사막 도시 이카로 이동, 오아시스 마을 와카치나에서 미친 버기 투어 달리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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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7일차 리마에서 사막 도시 이카로 이동, 오아시스 마을 와카치나에서 미친 버기 투어 달리기

딩동빵 2022. 11. 10. 2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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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투어를 담당한 버기 위에서


1. 일정

  • 오전 6시 반-7시 반) 아침 식사
  • 오전 7시 반-8시) 숙소에서 크루즈델수르 터미널 이동
  • 오전 8시-오후 12시 반) 리마에서 이카로 이동
  • 오후 3시 반-4시) 이카 숙소에서 와카치나로 이동
  • 오후 4시-6시) 선셋 버기 투어
  • 오후 6시 반-8시 반) 동행과 저녁 식사 후 숙소 복귀


2. 사진과 감상

맛있는 고추장 계란 볶음밥


  강제로 디지털 디톡스를 하고 일찍 잠들었는데도 일찍 일어나는 게 무척 힘들었다. 일어나도 여전히 정전은 해결 안 되어있는 게 당연했고. 어쨌든 오전 8시 버스를 타기 위해 크루즈 델 수르 버스 터미널에 7시 반까지 도착할 계획이었는데, 가스레인지에 불은 들어와서 어제 얼려둔 밥과 계란을 볶아 밥을 해 먹느라 시간이 꽤 지체되었다. 밥 먼저 다 먹은 사람이 설거지를 하는 식으로 시간에 쫓겨 나갈 준비를 다 했더니 좁은 복도에 전기공이 와 있어서 가방 가지고 나가는데도 애를 먹었다ㅋㅋㅋ

  숙소에서 나갈 때 시간을 보니 벌써 40분이더라. 버스 터미널까지는 어림잡아 10분 정도 걸리는데! 급한 마음에 호스트한테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택시를 타서 구글맵으로 버스 터미널까지 걸리는 시간을 보는데 아찔하더라. 리마 아침 시간대라 차가 엄청 막혀서 구글맵으로는 절대 시간 내에 못 도착하는 거로 나와 있었다. 그런데 호스트가 택시 기사한테 우리가 8시 버스를 타야 한다고 말했는지, 우리가 빨리 가 달라고 말하지 않아도 택시 기사가 알아서 최대한 빠른 지름길로 쇽쇽 가주었다. 그리고 7시 55분에 기적적으로 터미널 앞에 도착!


겨우겨우 탄 크루즈 델 수르 리마 - 이카행


  꼼짝없이 41솔짜리 버스를 놓치는 줄 알았다ㅠㅠ 택시 기사한테 진심을 담아 감사하다고 하고 헐레벌떡 가방을 챙겨 터미널 직원한테 달려갔다. 다행히 우리 가방을 무사히 체크인할 수 있었고 여권이랑 프린트한 티켓을 확인한 다음 바로 버스에 올라탈 수 있었다. 티켓 확인하는 중에 내 이름을 부르는 방송이 들린 것 같기도 했음. 완전 아슬아슬했던 상황.

  그렇게 크루즈 델 수르 버스에 올랐는데... 버스가 생각보다 너무 깔끔하고 좋아서 놀랐다. 우리는 지금껏 이름 없는 저렴한 버스들만 타고 다녔어서 짐을 미리 체크인하는 건 물론 이런 깔끔한 내부를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의자가 있고 앉거나 눕힐 수 있으면 됐지 싶었는데, 사람들이 왜 돈을 더 내고 이 버스를 타는지 알겠더라. 비행기처럼 좌석 앞에 미니 스크린도 있고 좌석 사이에 천 가림막도 있어 혼자 돌아다닐 때 유용할 것 같았다. 첫인상이 좋은 탓인지 다른 버스들보다 부드럽게 움직이는 느낌도 들었다.


숙소 직원 전용 주방 뷰
안성탕면 한 봉지와 오뚜기 떡볶이 하나


  페루에서 이동할 때 대부분 야간 버스를 탔던지라 대낮에 버스를 타고 이동하려니 잠이 안 와서 노래나 들으며 4시간을 버텼다. 버스 터미널에 내려서는 내가 화장실 간 사이에 친구가 택시 기사에게 숙소 얘기를 마쳐놓았다. 라스 플로레스 호스텔(Hostel Las Flores)까지 12솔 부르심. 그런데 기사가 한국말을 좀 했다ㅋㅋㅋ 우리에게 자기 동생이 버기 투어를 한다면서 꽃보다 청춘에도 출연했던 친구라고, 명함을 건네주었다.

  그런데 중간에 숙소를 헷갈려서 우리를 라스 플로레스 '호텔'로 데려다줬다. 우리가 다른 곳이라 얘기하니 자기 실수라면서(이때 과야킬 택시 기사가 그랬던 것처럼 배 째라 식으로 나오면 어떡하나 걱정했다) '친구, 괜찮아'라 말하곤 다시 잘 데려다줬다. 우리 숙소가 새로 생긴 곳이라 잘 몰랐다고. 그리고 택시에서 내렸는데 날씨가 장난 아니게 더운 거다.

  숙소 문을 딱 연 순간 시원한 바람이 나와서 잘 골랐다 싶었다. 체크인을 하며 방을 보는데 숙소 뽑기에 성공했음을 직감! 방이 넓고 너무 깨끗했다. 화장실도 우리가 지금껏 묵은 숙소 중 가장 넓고 깔끔했다. 한 가지 아쉬웠던 건 공용 주방이 현재 망가져 직원 주방을 쓰도록 해주었는데, 쓸 수 있는 도구들이 좀 더러웠다는 점이다. 하지만 별 수 있나, 깨끗한 게 없으니 그거라도 쓸 수밖에. 라면이랑 떡볶이 조리하는 동안 직원들이 세심히 도와줘서 고마웠음(좀 부담스럽기도 함). 하지만 라면이랑 떡볶이 물을 너무 많이 넣어서 매우 싱거웠다.

  밥 다 먹고 나서는 오늘 할 버기 투어를 예약했다. 아까 택시 기사가 준 왓츠앱 번호(+51 956 168 120)로 연락해서 선셋 버기 투어가 얼마냐고 물으니 인당 60 솔이란다. 남미사랑 톡방에서 3-40솔 정도가 적당하다고 들었던 기억이 나서 흥정을 좀 하니 결국 사막 입장비랑 이카에서 와카치나 사이 픽업과 드롭을 전부 포함하는 조건으로 인당 55솔에 해줬다. 이카에서 와카치나 왔다 갔다 하는 택시비까지 포함이니 괜찮다고 생각해서 오케이! 했다.


Casa Las Flores Ica

Casa Las Flores Ica · Av Cutervo 208, Ica 11000 페루

★★★★★ · 호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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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파는 이동식 아이스크림


  밥 다 먹고 나니 버기 투어까지는 아직 한 시간 정도 남아서 밖에 아이스크림 먹으러 나갔다. 아까 택시 타고 숙소로 오면서 길거리에서 팔던 아이스크림을 봤는데 먹음직스럽게 생겼어서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길 건너 아이스크림 할아버지를 발견하고 가려는 찰나 페달 밟으며 유유히 떠나버림... 대신 앞에 있던 몰에서 아이스크림을 찾아다녔는데 하나 있는 저렴한 가게는 사람이 없고 나머지는 과하게 비싸서 포기하고 돌아 나왔다. 그런데 숙소로 향하려고 길을 건너려는 순간 저 도로 멀리에서 느릿느릿 가까워지는 아이스크림 차가 보이더라. 잘 됐다 싶어 우리에게 가까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나씩 사 먹었다. 개당 2솔로 꽤 푸짐하게 담아주던데 맛은 다양한 걸 섞어줘서 그냥 달달한 느낌으로 먹었다.


  그러고 나서 숙소에 돌아와 내일 리마로 돌아갈 버스 티켓을 호스텔 컴퓨터로 찾아보느라 버기 투어 기사 루디가 호스텔 앞으로 픽업 온다던 오후 3시 반이 다 된 것을 모르고 있었다. 호스텔 초인종이 요란하게 울리는 것을 듣고 나서야 약속 시간이 다 된 것을 깨달아서, 친구가 급하게 방으로 들어가 투어에 필요한 것들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택시에 타려는데, 루디가 우리 신발을 가리키더니 사막에 가려면 스포츠 운동화가 좋을 거라고 하는 거다. 우리는 샌들이나 쪼리가 좋다는 리뷰를 듣고 운동화 대신 쪼리를 신은 건데, 경험자가 그렇게 말하니 들어야겠다 싶어 다시 올라가 방문을 열었다. 열어야 했는데, 열쇠가 누구에게도 없었다. 알고 보니 친구가 급하게 들어가서 짐을 챙기느라 열쇠를 안에 둔 걸 까먹고 방문을 잠가 버린 거였다.

  신발도 못 갈아 신고, 밑에서는 루디가 기다리고, 호스텔 직원은 마스터키가 없다고 하고. 총체적 난국이었다. 일단 투어 시간에 늦을 수 없으니 쪼리라도 신고 가기로 해서 택시에 겨우 탔다. 그런데 친구가 핸드폰이랑 모자도 방에 놓고 온 걸 뒤늦게 깨달았다. 보조 배터리와 연결선은 챙겨 왔다는 게 더 어이가 없었다. 그 와중에 남미사랑 톡방에서 투어 정보를 쉐어한 한국인 W가 버스 터미널에서 합류해 우리는 세 명이 되었다. 정말 정신없는 투어 시작이었음.


와카치나 사막 입장권 인당 3.7솔
버기가 있는 곳으로 열심히 걸어가는 사람들


  루디가 한국인들과의 인증샷과 편지를 자랑하는 걸 구경하다 보니(심지어 태극기 타투까지 보여줌) 와카치나에는 금방 도착했다. 나는 사막으로 좀 더 깊이 들어가야 오아시스가 나타나는 줄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도로와 바로 연결되어 있더라. 그래서 와카치나의 첫인상은 그렇게 감격스럽지 않았다. 이렇게 풍경 변화 없이 바로 도착이라고? 싶은 마음이었다.

  도착하니 우리의 버기 투어를 담당할 버기 기사가 오늘 투어를 함께할 무리를 이끌고 사막 입구로 향했다. 그곳에서 사막 입장료를 내고 입장권을 받으면 바로 눈앞의 모래를 딛고 사막으로 들어갈 수 있다. 한낮의 사막 모래는 뜨겁지 않았지만 발이 푹푹 빠져 걷기 힘들었다. 그럼에도 우리의 버기 기사는 성큼성큼 걸어 멀찍이 앞서 나간다.


버기를 향해 가는 길 마주한 오아시스
투어 시간때문에 내려가서 보지는 못했다


  사막을 조금 오르니 그 뒤로 오아시스가 보인다. 택시로 들어오며 본 풍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여서 눈길이 끌렸다. 와카치나 오아시스는 부호들을 위한 인공 휴양지에서 시작되었다던데 이곳에서 유유자적 여유를 즐기면 참 좋을 것 같긴 하더라. 남미 여행을 하면서는 자연적으로 형성되거나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비현실적인 풍경을 자주 보아 좋다.


와카치나 호수 보호지역

와카치나 호수 보호지역 · W66P+QQM, Ica 11000 페루

★★★★★ · 자연보호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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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이 안 보이는 넓은 모래사막
일렬로 쭉 기다리고 있는 버기들
이미 저 멀리 가 있는 사람들


  사막은 엄청 뜨거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덥지는 않아 좋았다. 그리고 몽골의 고비 사막과 요르단의 와디럼을 겪어서 사막 자체는 이제 별로 감흥이 없을 거라 예상한 것과 달리, 눈앞에 끝도 없이 펼쳐진 모래 언덕을 보니 또 마음이 벅차다.

  조금 걸어가니 일렬로 쭉 늘어선 제각기 다른 색깔의 버기가 보인다. 우리는 화려한 색깔의 버기 차에 당첨되기를 간절히 바랐으나 아쉽게도 밋밋한 붉은색 버기가 걸렸다! 하지만 나는 초록색이나 파란색보다 붉은색이 더 좋아서 나름 만족ㅎㅎ 그리고 친구가 냉큼 앞자리에 타길래 나도 따라 앞자리를 선점했다. 동행 W는 뒷자리 중앙을 차지. 앞자리에 타고나서 살짝 겁을 먹고 후회했지만 나중에 보니 이 선택은 아주 탁월했던 거였다. 버기 투어는 무조건 앞자리!


어지러이 겹친 버기들 발자국
버기투어 앞좌석에 앉으면 뷰가 죽인다


  투어 인원이 전부 버기에 타면 기다리는 시간 없이 바로 출발한다. 앞자리에 앉아 좌석 꽉 매고 두근두근하고 있자 기사가 부릉부릉 시동을 걸더니 저 넓은 사막을 향해 달려간다. 사막에는 앞서 간 버기들의 타이어 자취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데, 그 위를 지나가면 버기 위에서 퉁퉁 엉덩이 법석 한바탕 요란하게 겪을 수 있다.

  처음에는 속도를 내며 조그마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달리다가, 어느 순간 시야를 전부 가릴 정도로 가파르고 큰 모래 언덕을 요란하게 올라간다. 눈앞에 내리막이 안 보이니 버기에 탄 사람들 전부 그다음 수순을 예감한 듯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엄청난 급경사를 쏜살같이 달려 내려간다. 진짜 재미있고 스릴 넘치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데 그 와중에 풍경이 멋져서 진짜 짜릿했다.


저 멀리 도시와 거대한 산 하나가 보인다
끝없는 모래 언덕 뒤로 사막 도시도 보인다


  어느새 처음에 겁먹었던 건 싹 잊고 정신없이 드라이브를 즐기게 되었다. 뒤를 돌아볼 수 있는 여유도 가질 수 있게 됨. 달그락거리며 오르막을 올라가는 도중에 뒤를 돌아보니 모래언덕 뒤로 도시가 쭉 펼쳐진 게 보이는데, 너무 감격스러워서 친구한테 막 뒤 좀 보라고 난리를 쳤다. 버기 투어는 꼭 앞 좌석 바깥쪽에 앉자.


연두색 버기도 멀리서 보니 귀엽더라
질주하고 있는 빨간 버기


  버기를 타고 달리다 보면 저 멀리서 사막을 질주하는 다른 버기들도 보이는데, 그들이 달리는 걸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급경사 모래 언덕을 올라가던 버기가 어느 순간 아래로 쇽 사라지는 걸 보면 저 사람들 비명 왕창 지르고 있겠구나 싶더라. 그리고 우리 버기에 겁이 많은 사람이 좀 있었는지 기사 아저씨가 훼이크(급경사 오르막을 오르고는 완만한 내리막으로 방향 틀기)를 치는 족족 당해서 비명을 질러댔다. 뒤에서 이렇게 요란하게 소리를 질러대니 더 재밌음ㅋㅋㅋ

저 먼 언덕에도 버기가 멈춰 있다


  한참 동안 모래사막 롤러코스터를 즐기고 나서 버기가 한 언덕 위에 멈췄다. 주변을 둘러보며 사진 좀 찍으라길래 셋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이때 버기에 올라가서 사진 찍을 수 있어서 다 같이 올라갔는데 모래 바람이 장난 아니었다. 버기가 달리는 동안에는 마스크를 써서 잘 몰랐는데, 사진 찍는다고 마스크를 벗으니 그냥 모래를 입으로 퍼먹는 수준이었다.


보드를 받고 샌드 보딩을 기다리는 사람들
엎드린 자세로 쭉 내려가면 스릴 넘친다
다른 사람들이 내려오는 걸 구경해도 재밌다


  사진을 어느 정도 찍고 나자, 기사가 버기 뒤에서 보드를 하나씩 꺼내 건네주었다. 여기서 바로 샌드 보딩을 한단다. 샌드 보딩하면 옛날에 몽골 여행을 갔을 때 사막 언덕에서 이와 비슷하게 모래 썰매를 탔던 게 기억난다. 나는 그때 옷이 모래 범벅이 되는 게 싫고 무서워서 안 했지만, 지금은 두근거리는 걸 깨닫고 좀 놀랐다.

  어쩌다가 내가 첫 번째 주자가 되어 보드 위에 엎드렸다. 팔꿈치를 보드에 딱 붙여 고정하고 두 손으로는 보드 앞의 끈을 잡는다. 두 다리는 모래 바닥에 살짝 닿게 해서 브레이크를 걸며 내려가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기가 무섭게 기사가 내 보드를 쑥 밀었다. 속도가 꽤 되었는데 무섭지도 않고 너무 재미있어서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내가 첫 주자라 어디까지 내려가도 되는지 몰라 중간에 멈췄는데, 위에서 기사가 언덕 하나를 더 내려가라고 손짓을 하는 게 아닌가. 누가 뒤에서 보드를 안 밀어주니 내 발로 꿈틀꿈틀 내리막까지 기어가야 해서 너무 힘들었다. 언덕 위에서 다들 엄청 웃는 게 들림ㅋㅋㅋ 겨우 언덕을 다 내려가서 사람들이 타고 내려오는 걸 구경했다. 내가 좋은 본보기가 되었는지 그다음 사람들은 스무스하게 언덕 두 개를 연달아 내려왔다(ㅠㅠ).


나의 첫 샌드보딩을 함께 한 보드
우리의 하얀 줄무늬 붉은 버기


  투어 인원이 전부 내려오고 나니 기사가 버기를 몰아 언덕 위에서 우리가 있는 곳까지 내려왔다. 그 사이에 다들 보드 들고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다. 버기가 도착한 뒤에는 다시 자리에 올라타서 또 다른 모래 롤러코스터를 즐겼다. 첫 번째 롤러코스터 루트보다 더 험하고 스릴 넘치는 루트로 가서 너무 재미있었다. 버기 투어를 하면서 롤러코스터가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나 점차 깨달아 갔다.


볼 때마다 다른 풍경같은 사막
두 번째 샌드보딩 장소는 더 높고 경사진 모래 언덕이다
부드러운 모래 위에 누으면 기분이 무척 좋다


  곧 두 번째 샌드 보딩 장소에 도착했다. 이번 샌드 보딩 언덕은 첫 번째보다 훨씬 가파른 곳이었다. 첫 번째는 수월하게 했던 사람들도 이곳에서는 다들 주저하고 있더라. 우리는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높은 곳에 올라와 풍경이 좋다며 컨셉샷을 찍어댔다. 내가 저렇게 누워 있으니 모래에 SOS를 적어주기도 했다. 여행 중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이런 신선함이 퍽 즐겁다.

  사진을 찍다 보니 투어 친구들이 전부 다 내려가 있더라. 가장 겁이 많은 원피스 여자분만 보드에 엎드려 못 내려가겠다고 떨고 계셨다. 우리 셋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할 수 있다고 응원해줬다. 그리고 여자분 말은 듣지도 않고 기사가 보드를 밀어버림. 세상에서 가장 길고 높은 비명이었다.


선셋 포인트에서 내려 다들 여유를 즐긴다
언덕 뒤로 석양이 막 지고 있다
저 멀리 다른 선셋 포인트에 서 있는 버기


  이후로 두 번째보다도 더 높은 언덕에서 스릴 넘치는 샌드 보딩을 한 번 더 하고(마지막 샌드 보딩은 진짜 아찔했다), 선셋 포인트에서 다들 내려 석양이 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다들 조용히 해가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고 있으니 평화로워서 좋았다. 와디럼에서의 조용하고 잔잔한 일몰보다 좀 더 복작복작한 일몰이었는데 이것도 나름 좋더라.


석양이 지고 난 다음의 분홍빛 하늘
핑크빛 하늘을 배경으로 사막 위의 버기


  우리가 있던 포인트에서 석양이 지고 하늘이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나는 이 시간의 하늘도 무척 좋아한다. 주황빛과 푸른빛이 섞여 분홍색으로 물드는 이 시간. 해가 어느 정도 지고 나니 버기 기사가 사람들을 모아 다시 시작점으로 달려갔다. 마지막에 와카치나 오아시스가 한눈에 들어오는 언덕으로 올라갔는데, 내려서 사진 찍을 시간을 좋았을 텐데 그냥 바로 내려와서 엄청 아쉬웠다.


한눈에 보는 와카치나 오아시스
위에서 보니 미니어쳐같은 버기들
저 꼭대기까지 올라갈 엄두는 안 났다


  그래서 버기 투어가 끝나고 모래 언덕을 열심히 올라갔다. 가파른 모래 언덕 오르는 게 이렇게나 힘든 줄 처음 알았다. 막 군대 전역한 W는 빠르게 언덕 모서리에 도달했고 내가 제일 허덕대며 마지막 주자로 도착했다. 모서리에서 더 위로, 완전 꼭대기까지 올라가면 더 멋있는 뷰가 나올 것 같았는데 다리가 완전 녹다운되어버린 나는 그냥 이 정도 뷰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와중에 연인을 업고 저곳을 올라가던 사람도 있어서 다들 감탄했다.

붉게 물든 와카치나 사막
그림같았던 언덕 위의 두 사람
엄청 힘들게 올라간 모래 언덕 위에서


  그래도 애써가며 올라오길 잘한 것 같은 게, 아까 사막 한가운데에서보다 초입의 언덕 위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더 아름다웠다. 하늘이 전보다 더 붉게 물들고 이내 푸른빛이랑 섞여갔다. 저 멀리 높은 모래 언덕 위에 두 명이 움직이던데 무척 낭만적인 그림이어서 한 장 찍었다.


화려하게 반짝이는 오아시스의 밤


  석양이 지는 걸 감상하며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덧 사막의 하늘도 어둑어둑해지고 오아시스는 다양한 색의 불빛으로 반짝이기 시작했다. 사막에서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지만 루디가 돌아오라고 재촉해서 어쩔 수 없이 내려갔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로 들어가기 전에 신발에 들어간 모래를 털어냈는데 W의 신발에서는 모래가 한 바가지 나왔다. 이래서 쪼리를 추천했구나 싶기도 하고. 내 운동화가 또다시 와디럼에 갔다 온 이후처럼 모래 범벅이 되었다면 이번에야말로 신발을 포기하고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열쇠가 더 비싸 창문을 부수고야 만 호스텔 직원들


  그리고 오랜만에 낯선 한국인을 만나 신이 난 우리는 택시 드롭을 포기하고 와카치나에서 W와 저녁을 먹기로 했다. 루디한테 한 시간 뒤인 8시까지 올 테니 그때 호스텔까지 드랍해주면 안 되냐고 물었는데 너무 늦어서 안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냥 밥 먹고 알아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사막에 있는 동안은 와이파이가 안 터져 오아시스 쪽으로 나오자마자 데이터를 켜 봤는데, 마스터키가 없다던 호스텔에서 왓츠앱 메시지가 와 있었다. 열쇠공 부르는 게 비싸서 결국 창문을 깨고 방에 들어가 열쇠를 꺼내왔다는 거다. 심지어 창문 깨서 나온 유리 파편 사진까지 보내 두었더라ㅋㅋㅋㅋ 극단적이다...


친구의 비건식 피자(w 슬라이스 아스파라거스)
나의 BBQ 소스 베이컨 치킨 피자


  식당은 W가 알아둔 두 곳 중 연 곳으로 정했다. 게스트하우스인데 식당도 겸하는 곳이라더라. 일단 바깥의 오아시스 뷰가 좋은 곳이었다. 많은 리뷰에서 파스타 말고 피자를 추천하길래 35솔짜리 퍼스널 피자를 시켰다. 소스와 5개 토핑을 고를 수 있어 BBQ 소스와 양파, 토마토, 파프리카, 치킨, 그리고 베이컨을 넣었는데 빵이 좀 두껍긴 해도 나름 맛있었다. W는 페루비안 스파이시 소스를 시켰는데 하나도 안 매콤하니 참고하자.

  밥을 먹는 동안 각자 하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가장 좋았던 여행지 사진도 자랑하며 오랜만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눴다. W는 버기 투어를 하다가 버기가 뒤집어지는 사고가 종종 있다는 소문을 들어 아까 급경사를 내려갈 때 조금 무서웠다고 하던데, 그런 소문을 들어본 적 없는 우리는 그저 신이 나서 들떠 있었다. 이런 식으로 가끔 타지에서 만나는 모르는 한국인들과의 대화는 또 색다른 재미가 있더라. 여행이라는 공통점이 대화를 한결 편하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와일드 올리브 게스트하우스

와일드 올리브 게스트하우스 · Malecón José Picasso Peratta #154 Huacachina Ica Al costado de la biblioteca, Ica 11

★★★★☆ · 음식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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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돌아오니 휑한 창문이 있었다


  W와 말도 놓고, 일정이 잘 맞으면 쿠스코와 볼리비아에서 또 보자고 인사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 택시 잡는 게 힘들었지만 겨우 흥정해서 12솔로 깎았다. 숙소에 돌아와서 창문을 어떻게 깼나 보니 방문 위의 조그마한 창문을 깨고 들어왔더라. 대단하다.

  친구에게 급하게 버기 투어를 가느라 예약하지 못한 크루즈 델 수르 버스 티켓을 맡기고 먼저 샤워를 했는데(가위바위보 승자), 아까 식당에서 밥 먹기 전에 세수를 했는데도 얼굴에서 모래가 끊임없이 나왔다. 버기 투어의 유일한 단점이라면 단점일지도ㅋㅋ

  그래도 오늘 하루 진짜 신나게 즐겨서 좋았다. 처음에 이카에 오면서 기대했던 건 와카치나의 오아시스 마을이었고 버기 투어는 다들 추천하길래 하러 가는 것뿐이었는데, 버기 투어가 진국임을 뒤늦게 알았다. 속도감과 스릴을 즐긴다면 사막 버기 투어는 꼭 하자. 리마에서 이카까지 왔다 갔다 총 9시간은 걸리지만 그 시간이 절대 아깝지 않았다.


와카치나 사막 속에 나


3. 비용

  • 숙소 - 53솔
  • 식사 - 저녁 40솔
  • 관광 및 투어 - 선셋 버기 투어 55솔(호스텔 픽업 및 사막 입장료 포함), 숙소 - 크루즈델수르 터미널 8솔, 와카치나 - 이카 호스텔 택시 6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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